소개글
"19세기 서양사, 자본주의적 세계화와 분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하나가 된 세계
1. 새로운 시대의 개막
2. 철도와 전신의 시대
3. 금광발견과 무역망의 형성
4. 세계의 일체화와 공황
Ⅱ. 분쟁과 전쟁
1. 1860년대 정치관계와 정치가
2. 1860년대 유럽의 국제관계
Ⅲ.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우리는 세계사를 쓴다고 하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지구 여러 지역의 역사들을 하나로 끌어 모으는 것뿐이고, 여러 지역을 알고 있다고 해도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한 지역에서 생긴 일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무시해도 불편은 생기지 않았다. 해당 지역 밖과 내부에서도 ‘오지’에 대한 지식의 결여는 많았고 세계 여러 지역사이의 상호의존성 결여는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1848년 당시 유럽대륙을 제외한 광대한 타 지역들이 공백으로 남겨져 있었다. 세계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식은 일반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순수한 학구적 행위였고 지리적 지식의 견지에서도 ‘하나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지는 세계 각 부분의 외교적, 정치적, 행정적, 경제적 연결의 부재와 미약함의 표징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결정적 전제조건인 ‘세계시장’은 오래전부터 발전되어왔다. 1720년부터 1780년 사이와 이중혁명시대에 국제무역이 배로 증가했다. 1870년대에 이르러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미국시민의 1인당 대외무역액은 약 두 배 이상 늘어났다. 1840년대 2000만 톤의 연간 거래중량이 1870년대 약 네 배 이상 주요국가 사이에서 교류되었다. 터키 및 중동에 대한 영국의 수출은 1848년 350만 파운드에서 1870년 약 여섯 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는 아시아, 중남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35년간 거래액이 약 여섯 배로 증가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 표준에서는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양의 면에서는 생각조차 못했던 수준에 도달한 것이었고 세계의 교류망은 긴밀해지고 있었다. 탐험은 단지 알게 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것을 문명과 진보로 끌어들여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19세기 중반 ‘탐험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지구의 비밀을 지식으로 끌어온 소그룹에 불과했고, 경제발전과 이윤추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을 지칭했다. 아프리카 내륙의 지도제작에는 주로 이 ‘탐험가’들이 많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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