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학개론 한국전쟁과 간호성장기
- 최초 등록일
- 2020.05.21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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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간호학개론 한국전쟁과 간호성장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한국전쟁기: 1950~1953년
1. 한국전쟁과 간호
2.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정도
3. 한국전쟁으로 인한 문화의 변화
4. 세계나라들의 구호활동
5. 국민의료령과 간호
6. 대한간호협회 활동
7. 국민의료법의 영향
II. 한국전쟁과 전후 복구기의 간호: 전쟁이후~1960년 이전
1. 간호교육의 변화
2. 대한간호협회의 활동
3. 한국전쟁이 한국간호계에 미친 영향
III. 한국간호의 성장기: 1960~1980년
1. 간호교육제도의 변천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지속되었던 한국전쟁으로 국가적 손실은 지대하였으며, 우리 간호계도 많은 인명피해와 혼란이 발생되었다. 종전 후 많은 어려움에도 미국과 우방들의 원조로 빠르게 복구가 되었으며, 의학과 의료제도는 미국식으로 신속히 전환되었다.
1. 한국전쟁과 간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은 역사적인 민족적 비극으로 우리 간호계에 큰 파동을 초래하였다.
한국전쟁으로 정부와 국회는 부산으로 피난하였고, 간호사업과도 피난지에서 업무를 계속하였다. 한국전쟁 동안 의무부대의 수용시설에 입원한 환자는 총 397,519명이다. 북한군의 기습작전으로 인한 전상환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개전 초 의무부대는 인원과 장비, 시설 등 제반 여건이 미비 되었다.
3년 전쟁 와중에 대부분의 간호학교는 문을 닫고 교육을 중단하였으나 일부학교는 피난지로 옮겨와 계속 교육을 하였다. 또한 간호 요직에 종사하던 몇몇 지도층 인물을 위시하여 약 300명으로 추산되는 간호사가 월북, 피랍 혹은 사망하는 등의 손실이 있었다.
서울의대부속 간호학교는 부산 송도에, 세브란스 간호학교는 거제도 장승포에, 적십자간호학교는 제주도 서귀포에 피난학교를 열어, 교육을 하면서 피난민 간호를 하였다.
한국전쟁 시 전쟁터에서 부상자 간호를 위해 간호사는 물론 간호학생들도 동참하였다.
당시 3,700여 명의 간호사와 조산사가 부상병 간호와 난민구호에 참여하였으며, 300여 명의 간호사와 많은 간호학생들이 국군간호장교단 소속으로 들어가 KMAG(Korean Miltary Advisory Group) 지도아래 부상병간호에 참가하였다.
전쟁 초기 5개의 육군 병원과 1개의 요양병원에서 수용 능력은 8,560병상이고 운영 침상은 2,250개 미만으로 시작, 계속되는 전투로 전상자 수용을 위해 시설과 인력 보충하였다.
휴전 협정 조인시에는 육군 병원 15개, 정양 병원 3개, 이동외과 병원 8개로 총 43,600 개를 보유했다.
참고 자료
간호학개론(kay kittrell chitty, beth perry black), 출판사: 엘스비어코리아(유)
간호의 역사(대한간호협회)
간호사 (이영복)
간호학개론(계축문화사)
https://prezi.com/zw21lgpqmalg/presen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