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사 의상스님 의상대사의 생애와 법성게를 중심으로 한 레포트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20.04.26
- 최종 저작일
- 2014.05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 본 문서(hwp)가 작성된 한글 프로그램 버전보다 낮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열람할 경우 문서가 올바르게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신패치가 되어 있는 2010 이상 버전이나 한글뷰어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한국불교사 의상스님 의상대사의 생애와 법성게를 중심으로 한 레포트입니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의상스님 생애
2. 의상스님 사상 화엄종
3. 의상스님 화엄일승법계도
4. 법성게의 유래
5. 법성게 저술 내용 해설
6. 맺음말
본문내용
의상스님은 경주에서 태어나 (625 ~ 702) 성은 김씨. 법명은 의상(義湘)이다. 그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기초를 연 사람으로서 화엄십찰의 건립자이다. 그는 20세에 황복사(皇福寺)에서 출가하여 650년(진덕여왕 4년)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형(師兄)인 원효스님(元曉)과 함께 요동(遼東)으로 갔으나, 고구려 군에 잡혀 정탐자로 오인 받고, 돌아왔다. 다시 10년 뒤인 661년(문무왕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경상북도 문경의 어느 동굴에서 유숙을 하게 되었는데 새벽에 목이 말라 갈증을 호소했다. 그런데 그 것이 다름 아닌 해골물이였던 것이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신 것이었다. 원효는 그 것을 보고 바로 구역질을 했는데 갑자기 원효는 도의 길이 따로 있지 않다고 깨달음을 얻고, 결국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그와 헤어진다.
그 후 의상스님은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의 혼란을 피하여 661년(문무왕 1년)에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려 타고 건너가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중국 화엄종 제2의 지엄의 문하에 머물면서 교학을 연구하여 스승의 인증(印證)을 받고 학명을 떨쳤다.
당나라에 체류 중 의상스님(義湘)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할 때 양주성에 있는 어느 신도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곳의 집주인의 딸 선묘가 의상스님을 깊이 사모하였다. 의상스님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의상스님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의 집에 찾아갔지만, 선묘가 집을 비워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의상스님의 귀국 소식을 접한 이 선묘는 자신이 죽어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의상스님이 귀국할 때 바다에 몸을 던지며 '용으로 변하여 대사를 모시고 불도를 이루겠다.'고 원을 세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