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군 강조』
- 최초 등록일
- 2020.04.21
- 최종 저작일
- 20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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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 초의 무인인 강조에 대해 알아보고 평가한 자료이다. 강조의 정변과 정권장악의 과정 그리고 그 이후 거란의 침입과 연결하여 강조에 대해 설명하였다. 고려사 수업에서 인물관련 과제가 나온다면 제출하기 좋은 레포트이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강조의 정변
3. 강조의 정권장악
4. 거란의 2차침입
5.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강조는 고려 초의 무신으로 목종(穆宗) 때 여러 관직을 거쳐 중추사 우상시(中樞使 右常侍)로 되었으며 외직으로 나가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 都巡問使)로 되었다. 그는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千秋太后)와 외척 김치양(金致陽)이 함께 변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목종을 폐위시킨 뒤 시해하고 현종(顯宗)을 옹립했다. 이 정변은 거란의 침입에 빌미를 제공하여 제2차 여요전쟁을 가져왔다. 강조는 거란군을 막기 위해 나갔다가 거란군에 사로잡힌 뒤 요 성종의 투항요구를 끝까지 거절하다 목숨을 잃었다. 본 발제에서는 강조의 정변과 정권장악, 제2차 여요전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강조의 정변
1009년부터 고려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시작은 천추전(千秋殿)의 화재였다. 정월16일에 목종은 상정전(詳政殿)에 행차하여 연등회(燃燈會)를 거행하였다. 이때 대부시(大府寺)의 기름창고에서 불길이 솟았는데 화재가 번져 목종의 모후가 거처하는 천추전(千秋殿)을 태웠다 이로 인해 목종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다. 목종은 병세가 심해 정사(政事)를 볼 수 없을 정도였고 일부의 측근 신료들을 제외하고는 국왕을 문안할 수도 없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자신들의 자식으로 목종의 후사(後嗣)를 삼으려 하는 모의가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욱 긴박해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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