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심리학적 상담 (알프레드 아들러)
- 최초 등록일
- 2020.04.09
- 최종 저작일
-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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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알프레트 W.아들러가 주창한 개인심리학적상담에 관련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주요 학자 (알프레트 W. 아들러)
2. 인간관
3. 주요 개념
1) 사회적 관심
2) 생활양식
3) 인생 과제
4) 허구적 최종목적론
5) 열등감/우월감
6) 가족구도/출생순위
4. 상담 목표
5. 상담 과정
6. 상담기법
1) 즉시성
2) 격려
3) ‘마치~처럼’ 행동하기
4) 자기모습의 파악
5) 질문
6) 내담자의 수프에 침 뱉기
7) 악동 피하기
8) 단추 누르기 기법
9) 역설적 의도
10) 심상 만들기
11) 과제설정과 이행
12) 숙제 주기
본문내용
알프레트 W. 아들러
알프레트 W.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는 1870년 2월 7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출생하고 자란 유대계 의사이며 심리치료사로서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이다.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 구루병과 폐렴 등을 앓으며, 건강했던 형 지그문트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며 자랐다. 병약했기 때문에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어머니의 관심을 독차지했으나 2살 때 동생이 태어난 후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기게 되었다. 그 후 아버지와 신뢰관계를 형성하게 된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1902년 프로이트의 수요모임에 참여하여 초기에는 프로이트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자신의 이론에 대한 엄격한 충성과 획일화에 대한 프로이트의 압력으로 인해 1911년에 학회를 탈퇴하였다. 프로이트와 결별하고 1912년 개인심리학회를 결성한 후, ‘개인은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로서 사회 내에서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라는 전제를 가지고 개인심리학을 개발하였다.
아들러는 제1차 세계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후 비엔나의 많은 학교에 아동상담소를 개소하고 교사훈련에도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1926년부터 미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했고, 1932년 뉴욕의 롱 아일랜드 의과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나치주의가 아들러의 학문 활동을 방해하고, 미국에서의 강연 활동이 활발해지자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다. 1937년 스코틀랜드 에버딘에서 순회 강연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기까지 300여 권의 책과 논문을 발표하는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에서 정신질환자들보다 일반대중에 대한 관심을 더 보이며, 무의식보다 현실의 주관적 지각을 더 중요하게 강조하였다. 특히 인간은 일생 동안 사회 속에서 사회적 관심을 얻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계속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