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요에 그리고, 반 고흐
- 최초 등록일
- 2020.04.07
- 최종 저작일
-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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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그들의 솜씨는 번개같이 빠르다. ·········섬세한 감각과 소박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의 작품은 숨 쉬는 것처럼 단순하다. 마치 옷의 단추를 푸는 것처럼 확고한 선 몇 개만으로 쉽게 형상을 그려낸다.”
우키요에의 자연스러움과 편안함 그리고 자신의 드로잉 양식을 간결하고 느슨하게 다듬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반 고흐가 그들의 빠른 작업 속도를 부러워하며 칭찬한 말이다.
‘우키요’라는 단어는 원래 ‘근심스러운 세상’(憂世)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잠시 머물 현세를 굳이 근심만하며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말은 같지만 뜻은 다른 우키요(浮世)라 바뀌며 들뜬 기분으로 마음 편히 살자는 의미로 변화되었다.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시대(1603~1867)의 서민생활을 기조로 제작된 풍속화로 보통 목판화를 뜻한다. 극장, 식당, 사창가 등으로 쾌락을 찾아 모여드는 사회 계층의 습속을 담은 그림이다. 그렇게 우키요에는 현재의 세태와 풍속을 그리는 서민들의 풍속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 현재의 시각으로서 우키요에는 미술 작품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의 가장 신선한 단면을 보여 주는 현대의 메스미디어로 볼 수도 있다.
유럽에 일본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30년 전인 185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일본은 두세기에 걸친 쇄국을 끝내고 몇몇 서구 국가들과 통상관계를 맺었다. 그에 따라 일본 물품들이 파리와 런던에 수입되었고, 1860년대 초에는 그것들을 취급하는 상점이 많아졌다. 또한 1862년의 런던 박람회와 1867년의 파리 박람회에 일본 미술품이 전시됨으로써 일본 바람은 더욱 거세어졌다. 그때 우키요에 판화는 구겨지고 뭉쳐져서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완충제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우키요에는 잡지나 전단지처럼 가볍게 취급되었고, 유럽으로 수출되는 도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고흐 , 주디 선드 저, 남경태 역 , 한길아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