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의 죽음과 문화혁명의 종료
- 최초 등록일
- 2020.03.28
- 최종 저작일
- 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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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1. 모택동의 죽음과 문화혁명의 종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모택통의 죽음과 4인방의 타도
2. 문화혁명의 종언
본문내용
1. 모택통의 죽음과 4인방의 타도
천안문사건 이후 4인방은 그들이 장악한 언론기관을 총동원하여 등소평비판과 문혁 이념의 강조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택동의 신임이 두터운 화국봉은 문혁을 긍정하면서도 이데올로기투쟁을 외골수의 4인방과는 일선을 긋고, 엽검영, 이선념 등 당의 장로그룹 및 행정관료와의 연결을 강화함으로써 양자간의 보일 듯 말듯한 대립이 시작되어 있었다.
7월 28일 발해만 연안 일대에 진도 7,8의 대지진이 일어나 천진에 가까운 탄광, 공업도시 당산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사망자 64만이라는 대재난을 입게 되었다. 화국봉 등이 구호에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한창 때인 9월 9일 모택동이 서거하였다. 이미 임표라는 군사적 기둥을 잃었고, 언론기관 외에는 상해 등의 민병조직을 장악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던 4인방은 거대한 지주를 잃고 고립되었다. 천안문사건은 그들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이미 환전히 사라졌고, 오히려 원한의 표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참고 자료
중국근현대사 코지마 신지, 마루야마 마츠유끼 저, 박원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