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프랑스 제2제정과 영국개혁
- 최초 등록일
- 2003.11.11
- 최종 저작일
-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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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랑스의 민족주의
Ⅰ.프랑스 제2제정
Ⅱ.영국의 개혁
1.선거개혁법(1832)
곡물법폐지
차티스트운동
내각제도의 발달
하원의 발달
본문내용
루이 나폴레옹은 1년 후 또 다른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전체 유권자의 95% 이상의 찬성으로 드디어 프랑스의 황제인 나폴레옹 3세가 되었다. 프랑스 제2제정(1852.12∼1870.9)의 나폴레옹 3세는 철저한 독재를 실시하는 대신 도로와 항만을 개수하고 철도와 파리의 길을 넓혔으며, 혁명적인 언동과 유사사회주의, 보험등의 프로그램으로 하층계급을 회유하였다. 그는 지나친 급진파의 소요를 금지하고 출판을 엄격한 감독하에 두었다. 또 은행을 설립하고 중공업을 진흥시키며 노동자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자 애썼다. 그러나 부르주아지가 오히려 더 많은 혜택을 입었다. 그는 북부아프리카의 알제리아를 병합하였으며 인도-차이나에 대한 보호권을 확보하였다. 1854년에는 터키를 카톨릭수사들을 보호한다는 구실아래 러시아와 크리미아전쟁(1854-1856)에 끼어 들었고, 영국과 터키, 그리고 한동안 사르디니아의 도움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나폴레옹 3세의 보나파르티즘(Bonapartism)은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1860년경부터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로 그의 위엄에 금이 간 것은 그의 이탈리아 모험의 결과였다. 1858년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의 동맹을 맺고 오스트리아를 이탈리아에서 축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르디니아가 이탈리아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려 하고 로마교황령 마저 무너뜨리려 하자 나폴레옹은 이를 무산시키켰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진정한 통일을 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카톨릭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수많은 자유주의자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