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사상] 과학자로서의 홍대용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3.10.02
- 최종 저작일
-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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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과학자로서의 홍대용에 대하여..
목차
들어가며
1. 홍대용의 일대기
2. 홍대용의 정치적 사상
3. 과학자로서의 홍대용
4. 홍대용의 북학파에 미친 영향
5. 홍대용에 관해 비판적인 견해들
6. 결론
본문내용
들어가며
담헌 홍대용은 조선시대 영조, 정조 연간의 인물로서 노론 출신의 선비이며, 조선시대후기의 이른바 실학파의 선구자로서, 과학분야 뿐만아이라. 경세학분야의 업적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상가였다.
또한 담헌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전설을 주장한 학자로서도 유명하다.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약3세기, 갈릴레이로부터 약2세기가 뒤지지만 동양의 한 구석인 이 땅에서도 ‘땅이 움직인다’고 갈파한 것은 오직 담헌뿐이였다. 특히 그는 <의산문답>에서 단편적이나마 그의 학설을 소개하고 있으며, 또한 천문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수학분야에서도 <주해수용>이라는 저술을 남기고 있다. 또한 담헌의 후손 홍영선의 노력에의해 1937년 <임하경륜>과 <의산문답>을 묶어 출판된 <담헌서>는 홍대용의 사상과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다. 여기서 <임하경륜>은 경세제민의 포부와 실현을 위한 정책론에 관한 저서이며 <의산문답>은 허자와 실옹이 중국동북의 의무려산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이하에서는 1.홍대용의 일대기 2.홍대용의 정치적 사상에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고 3.과학자로서의 홍대용에 대하여 알아본 후 4.홍대용의 북학파에 대해 미친 영향에 대하여 살펴보고 5.홍대용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알아보는 방향으로 담헌홍대용에 대해 알아본다
1. 홍대용의 일대기
담헌 홍대용은 1731년 충청도 천원군에서 홍역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741년에는 할아버지인 평안도 용강의 삼화부사를 따라 관서로 여행을 하였으며 그후 김원행을 스승으로하여 석실서원에서 10년동안 공부를 한다. 홍대용이 20대후반에 나주를 여행하면서 나경석을 만나 함께 기계시계와 혼천의등 천문기구를 만들고 이때 아버지인 홍역이 제작비를 전담한다. 그리고 숙부를 따라 1765년 서른다섯살의 나이로 평생을 꿈꾸어온 중국여행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 한국연행록인 <을병연행록>과 한문으로 <담헌연기>를 쓴다. 특히 이때 북경의 남천주당에 여러번 가고, 유리창에서 항주의 세선비 엄성, 반정균, 육비등과 사귐으로써 서양과학에 대한 지식에 대해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1772년에 연암 박지원, 박제가등의 북학파 학자등과 친해지며, 1773년 철학소설<의산문답>과 수학책<주해수용>을 짓는다. 1774년에는 정조의 시직(세자를 가르치는 벼슬)으로 벼슬길에 올라 1776년 정조의 즉위와 더불어 사헌부감찰, 태인현감, 영천군수로 승격하고 1783년에 어머니의 병을 핑계로 영천군수를 사직하고 그해 가을에 중풍으로 사망한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조일문역 , 임하경륜. 의산문답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9년 김태준지음 , 홍대용
한길사 , 198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