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강소란?
- 최초 등록일
- 2003.09.29
- 최종 저작일
- 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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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집강소
삼례 2차 봉기
전봉준의 혁명의 목적
동학농민 운동이란?
남북접 갈등과 전투력 손상: 해월-전봉준 관계와 루터-뮌쳐관계의 비교
본문내용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
1894년 호남지방을 비롯하여 전국 가지에서 전개된 동학농민군의 反封建 反侵略 투쟁. 농민전팽의 경과는 크게 古阜民亂, 제 1차 봉기, 執綱所시기, 제 2차 봉기의 4단계로 나누어진다. 고부민란은 1894년 1월 10일 전라도 고부에서 일어난, 군수 趙秉甲의 貪虐에 항의하는 민란이었는데, 사실 이 민란은 그 이전의 단순한 민란과는 달리, 농민혁명을 꿈꾸어 오던 全奉準과 그의 동지들에 의하여 농민전쟁의 序章으로서 준비되어 계회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민란 발생 이후 고부의 농민들은 전봉준등 지도자들의 농민전쟁에로의 확대계획에 반대하여 일단 해산하였다. 이에 전봉준은 茂長의 동학접주 孫和中을 찾아가 그를 설득하여 전라도 일대의 동학교도들이 일제히 봉기하니, 이것이 제 1차 봉기이다. 3월 21일 고부 백산에 모인 동학 농민군들은 輔國安民외 기치를 높이 걸고, 자신들의 투쟁목표가 민씨 정권 타도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농민군은 4월에 들어서 黃土峴 전투와 長城 전투에서 관군에 승리한 뒤 28일 全州城에 입성하였다. 이에 買辦的 민씨 정권은 당황하여 淸에 출병을 요청했고, 5월 5일 청군이 아산만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이튿날은 日本軍이 한반도 석권을 꿈꾸고 인천에 상륙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전봉준 등 농민군 진영은 관군과 和約을 맺고 전주성을 나와 일단 해산하였다(5월 7일). 그러나 농민군이 완전히 무장을 해제하고 해산한 것은 아니었다. 전주성에 있던 농민군은 무장을 한 채 전라도 각지로 흩어져, 전라도는 사실상 농민군의 수중에 들어갔고, 이에 농민군 지도부는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농민군의 기강을 잡는 한편, 농민군의 임시행정기관으로도 사용함으로써 전라도 일대에는 사실상 농민혁명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는 동안 6월 21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