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 실크로드와 마르코폴로.
- 최초 등록일
- 2019.11.11
- 최종 저작일
-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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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크로드,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 실크로드와 마르코폴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실크로드
2. 마르코 폴로
본문내용
실크로드(Silk road)는 곧 비단길이라는 뜻이다. 실크로드라는 명칭은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드호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리히드호펜은 고대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 사이의 트란스옥시아나지방을 경유해 서북 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던 사실을 감안해, 중국으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교역로를 독일어로는 ‘자이덴슈트라센(Seidennstrassen)’ 즉, 실크로드라고 명명했다. 곧 이 명칭은 널리 전파되면서 비단길은 향료, 도자기, 보석 등을 교역했던 통상로였을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학문, 종교, 기술이 상호 교류되던 교통로의 시초가 되었다.
동서교류의 개척자 즉, 실크로드를 만들어간 대표적 인물로는 알렉산드로스, 장건, 반초가 있다. 이재령 편, 『동서 문명의 만남』, 단국대학교 출판부, 2014, pp.26~32.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위해 원정길에 나섰다. 알렉산드로스가 7년에 걸친 대원정을 끝내고, 누적된 피로와 대제국 통치에 대한 심적 압박으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로를 따라 건설된 70여개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가 상업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네트워크를 따라 물적 인적 교류의 급성장이 이루어졌지만, 중국에까지 이르는 완전한 실크로드는 아니었다.
참고 자료
장 피에르드레주 지음, 이은국 옮김, 『실크로드,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 시공사, 2000.
이재령 편, 『동서 문명의 만남』, 단국대학교 출판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