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이후의 고고학>
- 최초 등록일
- 2019.07.30
- 최종 저작일
- 20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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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통일 이후 신라사회는 급격한 변동을 겪게 되고 그러한 변화는 고고학적 물질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중대와 하대를 명확히 구분하여 대비시킬 수 있을 만큼의 조사와 연구는 아직 미진하다.
통일신라에서는 왕경이 체계적으로 정비되면서 도시공간이 확장되고, 궁궐·관아·저택·사찰 등의 건물과 도로·배수구·우물·담장 등의 생활 편의시설, 각종 생산시설이 경주라는 공간에 계획적으로 배치되었다. 경주 주위의 산록은 왕경 거주민의 생활을 위한 물품의 생산 공간, 그리고 분묘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한편, 이 시기는 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역·일본·발해와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기와 생산의 비역적 증가와 함께 기와건물이 급속히 늘어나고 곳곳에 불교사원이 세워지면서 왕경의 경관은 급격히 변모하였다. 무덤의 규모가 축조되고 화장과 장골기 매장 습속의 확산으로 지상에 거대한 봉토를 남기는 무덤의 축조는 줄어들었다.
참고 자료
한국고고학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