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의 사상 정리
- 최초 등록일
- 2019.06.05
- 최종 저작일
-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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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춘추전국시대에는 사람들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고난만 가중시키는 탁상공론인 유가에 대해 불만이 가득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수공업자 출신이었던 묵자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묵가라는 학파를 만들었다.
묵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따라서 이익을 배척하고 추상적인 인의만 강조하며, 삶에 도움이 안 되는 화려한 장례 따위를 꾸미는 유가의 행위는 재물 낭비이며 결국 생업을 해칠 뿐이라고 생각했다. 묵가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지향하고 실리적인 지역사회의 단결 주장했다. 전국시대에 묵가는 유가와 나란히 선 유력한 학파였다. 당시에 맹자는 묵가와 도가의 사상이 천하에 가득 찼다고 말할 정도였다.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시대로 다양한 사상가들이 나타나는 것에 어색함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다. 묵가가 백성들에게 대중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묵가는 항상 산 사람을 먼저 라고 생각했고, 백성의 의식주를 먼저 걱정하는 사상이었다. 백성의 굶주림, 추위에 떠는 것, 일하는 자가 쉴 곳이 없는 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가에서는 공자가 주의 문왕, 무왕, 주공을 이상적인 성인으로 생각하고 따랐지만 묵자는 하(夏)의 우왕(禹王)의 가르침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묵가의 시조는 전국 초기 송의 기술자 였던 묵자(墨子)였고 이를 뒤은 지도자는 거자(鉅子)였다. '鉅子’는 ‘큰 사람’이라는 뜻으로, 묵가 무리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鉅는 ‘크다’(巨)의 뜻과 동시에 ‘金’이 붙은 단어이므로 ‘연장통’을 뜻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기술자 집단에서는 연장통을 관리하는 사람이 우두머리이기 때문이다.
묵가는 정확한 계획을 세우고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거자의 인솔 하에 행동하는 사회변혁 실천 집단이었다. 대의 각국 군주, 귀족에 예속되어 있던 직능씨족이 봉건적 사회체제의 해체과정에서 결속하여 만든 길드적 공인집단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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