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더화이
- 최초 등록일
- 2019.05.24
- 최종 저작일
- 2016.09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1. 들어가며
2. 펑더화이의 생애
3. 세상에 불만이 많다
4. 나가며
본문내용
조선시대(朝鮮時代) 역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 한다면 당연 서유구(徐有榘)라는 인물을 꼽을 것이다. 그는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는 사상과 함께 배우고도 행동하지 않는 다면 그건 배우지 않은 것이라는 사상 속에서 철저히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갔다.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식을 해결하고 민초(民草)들과 함께 살며 그들이 진정 필요로 하고 불편해 하는 것에 대해 개혁하길 원했던 서유구, 이 서유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 중국(中國)의 근현대사에서도 존재한다. 다음의 말은 한 중국 군인을 칭할 수 있는 말이다. 병사나 간부나 똑같은 인민이다. 라는 생각에 계급장도 달리지 않은 군복을 입으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장군, 전쟁터에서 항상 부하들을 걱정하며 들것에 실려 가는 부상병을 직접 나르는 장군, 이러한 말들은 모두 펑더화이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9살 때부터 집에서 나와 노동을 하며 살았고 사랑한 여자와는 항상 이별로 끝났다. 이러한 기구한 운명덕분에 펑더화이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많았지만 사회주의(社會主義)와 마르크스주의를 소개받은 뒤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거름삼아 진정한 인민으로써의 눈을 뜨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생으로 보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조차 없이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펑더화이 그는 권위나 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서 인민으로써의 삶을 살았다. 이후 본 감상문에서는 이러한 펑더화이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2. 펑더화이의 생애
후난성(湖南省) 출신으로, 어려서 양친을 잃고 9살 때부터 집을 나와 어린 시절을 광부, 막노동으로 전전하였다. 이후 후난군관강무당(湖南軍官講武堂)에 입학하여, 국민당군의 장교가 되었다. 이후 국민당군의 북벌에 참가하고, 1928년 2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국공합작(國共合作) 결렬이후, 휘하 부대를 이끌고 후난 성 핑장(平江)에서 궐기하였다가 나중에 마오쩌둥(毛澤東)과 주더(朱德)의 해방구에 합류했다. 이후 홍군(紅軍)을 지위하면서 그 공적을 인정받아 제 3군단의 지휘관이 되었고 마오쩌뚱과 함께 대장정(大長征)에 참가하였다.
참고 자료
에드거 스노, 『중국의 붉은 별』, 두레, 1985.
왕단, 『왕단의 중국현대사』, 동아시아, 2013.
알랭 루, 『20세기 중국사』, 책과함께, 2010.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4』, 한길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