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일보,조용수의 일본활동,조용수의 국내활동,아람회 사건,인혁당 사건,
- 최초 등록일
- 2019.05.08
- 최종 저작일
-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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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조용수란 누구인가
1. 조용수의 출생과 학창시절
2. 조용수의 일본활동
3. 조용수의 국내활동
II.민족일보사건
1.민족일보 성격
2.민족일보 구성
3. 장면 내각 시절의 민족일보
4. 5.16 군사쿠데타 후의 민족일보
III.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명예회복과정
IV.유사사례의 소개 및 비교
1.아람회 사건
2.인혁당 사건
V.평결
본문내용
(1)조용수의 출생
- 조용수는 1930년 4월 24일 경남 진양군 대곡면 단목리에서 태어났다. 조용수의 가문은 원래부터 영남 양반가문이었고 조용수의 부친은 조판상씨이고 사진작가의 일을 하였다. 조판상씨는 진주의 명문가 출신의 하종식씨의 딸 하규남씨와 결혼했고 조용수는 이러한 집안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조용수의 외삼촌 하만복씨는 과도정부 입법의원, 반민특위 위원, 2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삼촌 조경규씨는 대구신보, 대구시사신보 사장을 지냈고 2대, 3대, 4대 국회의원으로 자유당 원내총무를 두 번이나 지냈다. 외삼촌인 하만복씨는 자식이 없어서 조용수를 데려와 같이 살았다. 국회의원인 삼촌, 외삼촌 그리고 외삼촌 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자연스래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진주 중학교 시절, 좌우익의 갈등을 경험
- 조용수는 진주 봉래초등학교를 거쳐 진주중학교에 다녔다. 조용수는 초‧중학교 시절동안 수석을 한번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조용수의 막내동생 조용준씨에 의하면 집념에 강하고 원칙에 엄격했고 조용수는 고전음악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 조용수가 진주 중학교를 재학 중일 때 사회는 물론 중학교에서도 심하게 좌우익의 갈등이 벌어졌다. 당시 좌우익의 마찰은 자주 일어났고 좌익의 협박은 조용수가 학교를 자퇴하게 만들었다. 당시 조용수는 3학년이었고 우익적 입장으로 학연간부 활동을 했었다. 그러자 좌익 학생들이 조용수에게 심한 협박을 했고 그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진주 중학교를 자퇴를 했다. 그리고는 대구 대륜중학에 편입을 하고 대륜중학에서 졸업을 했다. 대륜중학을 졸업한 조용수는 1950년 연희전문(지금의 연세대)의 정경학부에 입학했다.
* 좌익과 우익 설명
좌익, 우익은 좌파, 우파라고도 하는데 프랑스 혁명 당시에 국민의회에서 의장석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특권계급인 왕당파가 앉고 왼쪽에는 비특권계급인 공화파가 앉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