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고전문학과 비교하기
- 최초 등록일
- 2018.12.20
- 최종 저작일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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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관련 역사들의 소견
2. 본론 > 연극「이」와 영화 「왕의 남자」에서의 변별성 찾기
1) 조선왕조실록, 원작과 영화와의 서로 다른 변별성 찾기
2) 중재자로서의 처선과 공길
3) 폭군의 멍에를 벗긴다- 연산군은 진정 폭군인가?
3. 결론> 왕의 남자가 그린 역사
본문내용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인의 여가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체로 자리 잡은 영화를 본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해 보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영상 매체가 현대인을 지배하는 듯한 요즘은 더욱 그러하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체험 해 보지 못한 세상사를 스크린을 통해 만나는 동안 우리의 인식은 폭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란 우리 인간이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체험이 아닐까 싶다.
최근 한국 영화사상 최다 관객 동원이란 신기록이 붙은 <왕의 남자>는 그래서 더욱 친숙하게 우리들 곁에서 회자 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준익의 영화 <왕의 남자>는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김태웅의 <이(爾 )>를 원작으로 만들어 졌다. 원작자 김태웅은 <연산군일기> 60권 22장 “배우 공길이 논어를 외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 하였다.”라는 기록 한 줄을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실록에 정난정이라는 여인에 대한 한 줄의 기록이 있는 것을 보고 <여인천하>라는 소설이 쓰여 졌고, 서장금이라는 여의에 관한 단편적 기록 몇 줄이 있는 것을 기초로 드라마 <대장금>을 만든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짧은 역사적 기록 하나를 밑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하여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낸 치밀한 구성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한국영화가 대중예술 역량을 발휘하게 된 데는 관객들의 수준도 한 몫을 차지하겠지만, 영화 종사자들의 끊임없는 열정과 투지 또한 간과 할 수 없음이다.
한국영화사상 또 다른 신호탄으로 1,230만 명이란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 <왕의 남자> 가 주목 받는 이유는 단지 뛰어난 흥행 성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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