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본문 및 내용요약
2. 주제
3. 기존 연구 검토
4. 부족한 소견
본문내용
(1) 작자문제
<쌍화점>의 제작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고려사』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대체로 고려 충렬왕조의 소산이라는 설 양주동, 『여요전주』, 을유문화사, 1947, p253
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그 작자에 대해서 연구자들의 견해
가 상이한데, 작자를 알 수 없는 항간유행(巷間流行) 속요로 본 경우 장덕순, 『국문학통론』, 신구문화사, 1962
가 있고 그 이외에도 구체적인 지적에 대해서 약간씩 견해를 달리한다. 먼저, 작자를 “민중속요설”로 보는 견해는 당시 경도부근에 유행된 속요를 그대로 채록함이겠다고 하여 유행 속요이던 것이 궁중에 유입되었다고 본 것이다. 양주동, 앞의 책, p253.
그리고 행신배소작설(倖臣輩所作說)이 있다. 정병욱은 행신들의 아첨과 그에 대한 자기 모멸이 혼합되어 생긴 노래 정병욱, 「<쌍화점>고(1962)」, 『한국고전시가론』(신구문화사, 1997 재수록)
라고 하였는데, 이 견해는 송정헌 외의 많은 논자들이 행들의 아첨이 기초가 되어 충렬왕의 기호에 부합하기 위한 음탕한 내용의 노래라고 하였다.
기존 논의 중에서『고려사』악지의 敎閱比歌(교열비가)와 『고려사』열전 간신 오잠조의 “敎以新聲”이라는 것 등을 근거로 오잠소작설(吳潛所作說)을 주장하는 견해 려증동, 「<쌍화점>考究一」,『어문학』19, 어문학회, 1968
도 있다. 충렬왕이 연악(宴樂)을 좋아하여 오잠, 김원상, 석천보, 천경 등이 노래와 여색으로 은총을 받들기 위해 관기들 중에서 기예가 뛰어난 자를 고르고, 또 성중의 관비나 여무(女巫) 중에서 노래를 잘하는 자를 골라 남장이라 결성하여 노래를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노래를 가르칠 만한 자신과 실력이 있는 자라고 생각되고, 또 지은 당사자가 아니면 남을 가르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자를 분명 오잠, 김원상, 석천보, 석천경 등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고려사』열전 오잠조를 보면 『고려사』악지에서 “敎閱比歌”라고 한 것을 “敎以新聲”이라고 하여 분명이 “새로운 노래”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어, 이로써 <쌍화점>이 새로 지은 노래라는 것을 주장한다.
참고 자료
최용수,『고려가요연구』, 계명문화사, 1993
김정주,『高麗歌謠』, 조선대학출판부, 2002
최미정,『고려속요의 전승연구』, 계명대학교출판부,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