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보고서 (암사동 선사유적지)
- 최초 등록일
- 2018.09.30
- 최종 저작일
-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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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직접 답사하여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사진도 직접 찍은 것이고, 저만의 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보고서를 제출했던 과목에서는 A+ 성적을 받았습니다.
참고하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차
1. 암사동 선사유적지란?
2. 신석기 사람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3. 신석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4. 암사동 유적지로 본 신석기 사람들의 식생활
5. 빗살무늬토기
6. 신석기 사람들의 무덤
본문내용
• 암사동 선사유적지란?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유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신석기 유적 중 최대의 마을 유적이다.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고,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거쳐 총 30여기의 신석기 시대 집터와 3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신석기 문화층은 방사선탄소연대측정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 유적으로 밝혀졌다. 또한 중서부지방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를 비롯해 갈돌과 갈판, 어망추, 탄화된 도토리 등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 출토되어 신석기 인들의 생활 문화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신석기사람들은 어디서 살았을까?
신석기인들은 이동생활을 하던 구석기인들과 달리, 바닷가나 강가에서 정착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거주할 살림집이 필요하였다. 자연동굴을 주로 이용하였던 구석기인들과 달리 신석기인들은 거주 지역의 생업활동과 환경에 적합한 형태의 살림집을 마련하였다. 신석기인들의 살림집은 대부분 움집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집자리는 복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 원인은 조사된 집자리가 소수에 불과하며, 유실이 심하여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은데 있다. 또한 그동안 집자리 내부에서 기둥구멍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와 기둥구멍이 조사되었다고 하더라도 불규칙적인 것이 많아 집자리 복원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왔다.
신석기시대 집자리 중 복원이 이루어진 유적으로는 암사동 유적과 둔산 유적, 오산리 유적이 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 지금까지 발굴조사로 드러난 집터는 29채로 모두 반지하식이다. 집터는 한강변 모래땅에 구덩이를 파고, 가운데는 음식 조리와 난방을 위해 강돌을 둘러 만든 화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집터 내부에는 생활도구를 보관하기 위한 선반시설과 출입 계단이 있는 것도 있다. 집 형태는 원형과 모를 죽인 네모꼴을 이룬다. 집 구조는 백이기둥 4개가 세워져서 뼈대를 이루는 쌍다리형이나 까치구멍집(한쪽은 모임지붕이고 다른 쪽은 합각을 만든 집)이 되는 것으로 복원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