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당쟁의 역사

최초 등록일
2017.12.14
최종 저작일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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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및 통한국사를 통해 조선시대 초기부터 중기까지의 붕당정치만을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당쟁에 대한 이유도 같이 포함하였습니다.

목차

1. 동서붕당과 당쟁의 시작
2. 기축옥사와 서인의 승리
3. 동인의 승리와 분열
4. 광해군과 북인정권
5. 인조반정과 서인정권
6. 예송 논쟁과 사색당파 (서인의 경신환국)
7. 장희빈과 인현왕후 (기사환국과 갑술환국)
8. 노론과 소론의 갈등
9. 총평

본문내용

당쟁의 시작은 이조전랑 선출에서 시작되었다.
이조전랑은 인사를 담당하는 직책이었는데, 상당한 영향력이 있어서 여러 파벌이 노리고 있었다.
1572년 (선조 5년) 이조 전라에 김효원이라는 인물이 추천되었는데, 그는 문과 급제에 청빈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젊은 선비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른바 소장파의 대표격인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은 이조전랑에 추대하자 노장파가 반발에 나섰다.
노장파의 대표는 명종의 부인이었던 인순황후의 동생 심의겸이었다.
그는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명분은 아래와 같다.
“김효원은 을사사화를 일으킨 윤원형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따라서 그를 믿을 수가 없다.”
이 방해공작이 처음에는 먹혔으나 2년 후인 1574년,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그 뒤 1년 후 다시 이 문제가 거론된다.

1575년 (선조 8년) 김효원이 이조전랑에서 물러날 때, 후임자로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이 추천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반발하고 나선다. “심씨는 왕의 외척이다. 외척이 이조전랑이 되면 공정한 인사가 이뤄질 수 없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 사건 이후 김효원과 심의겸은 철천지 원수가 되게 된다.
대신들도 이들을 중심으로 나눠져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김효원은 서울 동쪽에 살아 동인, 심의겸은 서쪽에 살아 서인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를 동서분당이라고 한다.

2. 기축옥사와 서인의 승리

당쟁의 시작에서 기세를 잡은 쪽은 김효원이었다.
그래서 동서분당 이후 세력이 강한 쪽은 동인이었다.
그러나 이이가 조정의 핵심인사가 된 이후에 서인의 세력이 커졌다.
이이가 서인에 속하면서도 중도 입장에서 잘 조율했기 때문에 큰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1589년 (선조 22년)에 큰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된다. 동인에 속했던 정여립은 높은 관직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고향으로 낙향했는데, 그곳에서 조정과 서인에 대한 불만이 점점 쌓여만 갔다.

참고 자료

통한국사 / 다산에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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