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의 농민에 대한 인식
- 최초 등록일
- 2017.11.15
- 최종 저작일
-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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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해방 후 농민의 현실
3. 농민에 대한 이해와 방안
(1) 해방 후 토지개혁
(2) 협동조합 결성을 통한 농민보호
4. 맺음말
본문내용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다양한 방향에서 국가건설을 구상하였다. 미국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지향한 이승만세력, 소련을 기반으로 공산주의를 지향한 공산당세력, 좌우를 아우르는 중도세력을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중도세력은 대체로 사회민주주의적 발전을 지향하였는데, 그 가운데 조봉암이라는 존재는 해방 이후에서 1950년대의 중도정치세력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봉암은 남한정권을 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주정체로 설정하고 당면한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특히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그러한 노력은 가속화되는데 그것은 이승만을 비롯한 한민당계열과 다른 입장의 정치노선이었다. 그리고 이후 진보당을 창립한 후에도 이러한 관심은 지속되는데, 이는 조봉암이 가진 사회민주주의의 경향과 그의 지향점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의 최종적 목표는 “인간을 하나의 자본의 노예로 만들지 말 것이며, 또한 인간이 자본의 제왕이 되지 못하게 하며, 각 개인의 국가 생활이나 사회생활이 있어 모든 문제는 일체의 영역에 있어 아무런 정치적, 계급적, 권력적 차별이 없는 공동의 자유와 권리를 향수하고 주장할 수 있게 하는 사회” 즉 사회주의적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에서 주목할 점은 당시 한국이 가진 경제적 모습, 즉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농민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주장하는 강령이나 구호에서 보이는 ‘피해대중’은 농민, 노동자, 지식인 등 억압 받는 피지배층 전체를 의미하는데, 당시 남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은 상당한 빈곤에 시달려 있었으며, 정부수립 후에는 土地改革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에 대해 조봉암은 초대 농림부장관을 맡아 토지개혁의 지휘하여 농민의 입장을 중심으로 한 토지개혁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물론 조봉암의 안이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이를 통해 그가 가진 농민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세 경영의 농민을 협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이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농민의 경제적 문화적 생활향상을 기하는 동시에 농업경제를 근간으로 국가경제를 부흥 재건하고 했다.
또한 진보당을 창립한 이후에도 농민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농촌의 위기를 정면에서 해결하고자 하였다. 농업 생산성을 증대하여 농민을 구제하고 농촌이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조봉암이 가진 농민에 대한 인식은 당대의 이승만 정권이나 사회주의 계열과는 차별을 두고 있으면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하려 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그가 구상한 국가관이나 목적에 농민과 농촌에 대한 변화는 필수적이자, 그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조봉암이 언급한 피해대중 속에 농민이 해방직후에 어떠한 현실에 처해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가 추구한 농촌과 농민의 개혁 활동을 토지개혁과 그가 제시한 협동조합 결성을 통해 알아봄으로써 조봉암이 가진 농민이라는 존재를 확인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조봉암, 「노동문제의 이념과 정책」 죽산 조봉암전집
박희범, 「경제개발계획과 한국의 민주주의」 신동아1966
김성보, 「1950년대 李承晩正權의 農政과 농업문제의 성격」 人文學志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