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 김만중과 구운몽 - 한국고전소설론
- 최초 등록일
- 2017.07.20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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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김만중의 생애
3. 구운몽
4.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관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서포 김만중은 조선 후기의 문신·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가 있다. 특히 『구운몽』은 그 재미와 작품성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현재까지 향유되고 있는 『금오신화』, 『홍길동전』, 『구운몽』과 같은 소설들이 역사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도 같이 언급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도 사랑받을 수 있는 필력을 가진 김만중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2. 김만중의 생애
김만중은 1637년 2월 10일 한낮 병자호란의 와중에 피란 가던 배 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익겸은 강화도가 함락될 때 선원 김상용과 함께 화약에 불을 질러 스스로 산화했기 때문에 그는 유복자였다.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수도 심양을 떠난 것이 인조 14년 병자년, 즉 1636년 12월 2일이었는데, 그로부터 두 달도 채 못 된 1637년 1월 22일에는 강화도가 함락되고, 뒤이어 30일에는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항복했으니, 김만중이 태어난 것은 병자호란이 끝난 지 열흘 뒤가 된다.
1639년(인조 17년) 3세 때 윤부인이 5세인 그의 형 김만기와 함께 몸소 글을 가르쳤다. 윤부인은 소학, 사략, 당시를 손수 가르치며 좌씨전(左氏傳)도 짜고 있던 비단을 끊어내어 사줄 정도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김만중이 네 살 때 할아버지 참판공 김반이 죽고 여덟 살 때는 외할아버지 하빈공 윤지가 별세했다. 이후 윤부인은 가난이 더욱 심해져서 베를 짜고 수를 놓는 것으로 겨우 연명했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태연한 척했다.
김만중의 스승은 어머니였다. 그 다음은 외조부였다. 성리학과 역학은 숙부에게서 배웠고, 한시와 패관지설은 백형에게서 배웠다. 이러한 이유로 김만중은 가족에게만 공부를 배웠기 때문에 외부의 스승은 따로 없었다. 그의 유별난 지식과 재능은 모두 어머니와 가족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참고 자료
김만중(2012). 『구운몽 – 세계문학전집 』. 민음사
김병국(2002).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서울대학교출판부
김일렬(2010). 『고전소설신론』. 새문사
박순식(2005). 『구운몽에 나타난 불교수행 연구 – 삼보와 삼학을 중심으로 -』. 전북대학교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박정희(2006). 『서포 김만중의 문학론과 창작의 실제』. 경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박지경(2001). 『구운몽 연구 –사상을 중심으로-』. 한남대학교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사재동(2006). 『서포 김만중의 문화사적 위상』. 한국사상문화 학술지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