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벌정치와 반군벌운동(연성자치운동)
- 최초 등록일
- 2017.07.11
- 최종 저작일
- 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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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군벌의 기원과 계파
1. 군벌의 의미와 형성 배경
2. 군벌 시대의 시기구분과 계파
Ⅱ. 군벌통치의 특성
1. 재정의 조달
2. 제국주의와의 관계
3. 구성의 특성
Ⅲ.군벌통치의 전개
1. 북양 군벌의 형성과 분열(중앙군벌)
2. 서남 군벌과 호법정부의 성립(지방군벌)
Ⅳ. 반군벌운동(연성자치운동)
1. 발생배경
2. 전개과정
3. 결과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북양 군벌의 형성과 분열
1) 형성
청말 백련교난, 농민반란, 중영전쟁 그리고 태평천국운동을 거치면서 구식군대로는 더 이상 청조지배체제를 지탱할 수 없음이 판명된다. 태평천국운동 때 창설된 증국번의 상군(湘軍)과 이홍장의 회군(淮軍)은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결과적으로 중앙 정규군대 외에 사속적인 지방 차원의 무장력을 허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패배로 청조는 회군같이 지연적 통속관계에 의해 조직된 자위군이 아닌 정부차원에서 신식 군대의 재무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제일 먼저 정무군과 자강군을 편련하였다. 그 중 정무군은 천진 근방 소참지방에서 독일인 한네켄을 군사교관으로 하여 신식 군대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이후 이것이 원세개의 소관으로 이양됨에 따라 이를 기초로 규모를 확충하여 신건육군을 창설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북양상비군으로 확대․발전시키는 과정이 바로 북양군벌의 직접적인 형성과정이었다.
2) 분열
1916년 원세개가 죽자 그의 직계 부대로 구성된 북양군벌은 직예파와 안휘파로 나뉘어 파벌 갈등이 시작되었다. 직예파의 주요 군벌로는 풍국장, 조곤, 오패부 등이 있었다. 안휘파는 단기서 휘하에 있었다. 두 파는 중앙정부로서의 정통성과 열강의 차관과 관세. 염세 등의 수입을 가지는 북경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원세개 사망 후 총통직은 휘하 군대를 가지지 못한, 부총통 여원홍이 계승했다. 직예파 수령 풍국장은 부총통에 선출되고 안휘파 수령 단기서는 국무총리직을 맡았다. 여원홍의 총통부와 단기서의 내각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여부를 둘러싸고 충돌했다. 단기서는 국회를 협박해 참전안을 가결시켰고 여원홍은 단기서를 해임하고 군벌 장훈을 북경으로 불렀다. 그러나 장훈이 국회를 해산하고 여원홍을 퇴진 시킨 뒤 청조의 마지막 황제였던 선통제 부의를 다시 제위에 추대하는 복고적인 정변을 일으키자, 단기서는 공화정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일으켜 장훈세력을 진압하고 권좌에 복귀했다. (장훈의 청제 복벽)
참고 자료
「중국사」, 신승하, 서울: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5
「중화민국과 공산혁명」, 신승하, 2001, 대명출판사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신성곤 윤혜영, 2004, 도서출판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