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둘러싼 논쟁
- 최초 등록일
- 2017.07.05
- 최종 저작일
-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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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이의 십만양병설
2. 율곡의 십만양병설의 개요
3.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
4. 이에 대한 반대 의견
본문내용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이의 십만양병설
임진왜란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율곡 이이가 왜군의 침입을 예견하고 10만 명의 군사를 기르자는‘십만 양병설’을 주장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율곡의 십만 양병설에 대한 진위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 근거로서는 개인의 행장에 근거한 역사기록, 유성용의 율곡 시호 사용의 오류, 당시 조선의 경제적 요건에서 바라본 현실성 여부 등을 통해 율곡의 십만양병설이 허구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허구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면서 율곡의 십만양병설의 실존을 말한다. 본 장에서는 십만양병설을 둘러싼 다양한 주장들을 정리하고 알아보도록 하겠다.
율곡의 십만양병설의 개요
십만양병설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율곡의 문집이 아니라 그의 문인인 김장생(1548~1631)이 찬술한 『율곡행장』(1597년)이다. 뒤이어 이를 바탕으로 이정구(1564~1635)가 찬술한 『율곡시장』(1612녀), 이항복(1556~1618)의 『율곡신도비명』(1618년 추정)과 송시열(1607~1689)이 편찬한 『율곡연보』에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선조수정실록』 15년(1582) 9월조와 『중보문헌비고』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율곡연보』엔 『선조수정실록』과는 다르게 계미년(1583년, 선조 16년) 4월조에 실려 있다. 임진왜란용이 되어버린 율곡의 십만양병설, 민덕기(2013)
김장생의 행장에 실린 십만양병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선생[율곡]이 한번은 경연에서 미리 군대 십만명을 양성하여 급한일이 있을 때에 대비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10년이 못가서 흙이 무너지듯 하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유성룡이 “일이 없이 군대를 양성하는 것은 화근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반대하였다. 이 당시는 난리가 없어진지 오래되어 안일한 것만 좋아하여서 경연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선생의 말씀은 잘못이다.”고 하였다. 선생은 나와서 유성룡에게 말하기를, “국세의 위태로움이 달걀을 쌓아놓은 것만 같은데 시속 선비는 시무(時務)을 모르니 다른 사람이야 진솔로 기대할 것이 없거니와, 당신도 또한 이런 말을 하는가.”하였다.
참고 자료
임진왜란용이 되어버린 율곡의 십만양병설, 민덕기(2013)
율곡의 십만양병설에 대한 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