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통일과정과 문제점
- 최초 등록일
- 2017.05.04
- 최종 저작일
-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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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독일의 분단과정
Ⅱ. 독일의 통일과정
Ⅲ. 독일 통일의 문제점
Ⅳ. 독일 통일이 한국 통일에 주는 시사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독일의 분단과정
독일은 2차 대전 후 연합국들이 다시는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3~4개 국가로 분할하기 위해 분할 점령한 것이 냉전으로 굳어져 분단되었다.
연합국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독일을 분할하기로 하고 나치독일이 항복한 후 4개 지역으로 나누어 점령했다.
그러나 7월 개최된 포츠담 회담에서 독일분할 계획이 취소되고 연합국이 단일 행정기관을 통해 통치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방 3개국과 소련 간의 입장차이가 커 단일 통치권 행사가 어렵게 되었으며, 각 국은 자국 점령지역 내에서 독자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서방과 소련 간에 냉전이 격화됨에 따라 1949년 서방 3개국과 소련이 각각 자기 점령지역에 독립국가를 창설함으로써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
Ⅱ . 독일의 통일과정
①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
동독 공산정권의 붕괴과정은 헝가리에서 시작되었다.
1989년 6월 헝가리 개혁정부가 개혁의지의 표시로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철조망을 제거하자 동독주민들의 대량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동베를린 주재 서독 상주대표부, 헝가리·폴란드·체코 주재 서독대사관에 동독주민들이 몰려들어 서독행 비자를 요구했다.
서독정부는 소련 및 동독 당국과 협의, 체코·폴란드에 있던 동독주민 2만여 명을 열차편으로 서독으로 수송했다.
그러나 서독 텔레비전을 통해 이를 알게 된 동독주민들의 탈출이 늘어나 매일 2,000여 명이 서독으로 탈출하고 시위가 전국규모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10월 7일 동독 공산 정권 수립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늦게 오는 자는 인생의 벌을 받는다”는 소련 속담을 인용, 동독의 개혁을 촉구하자 시위가 가열화 되었으며, 10월 16일에는 라이프치히에서 12만 명이 시위에 참가하는 등 시위규모가 급속히 커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시위확산과 소련의 유혈진압 반대로 무력진압을 포기한 동독 지도부는 10월 18일 호네커를 퇴진시켰고 개혁성향으로 알려진 에곤 크렌츠가 서기장에 취임했다.
참고 자료
황의서 『독일 통일이야기』야스미디어 2009
염돈재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평화문제연구소 2010
잘못 알려진 독일통일, 그리고 한반도 통일의 비전, 코나스넷, 2011-08-13,http://www.kona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