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와 그의 시대
- 최초 등록일
- 2017.04.16
- 최종 저작일
- 20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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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김종서는 누구인가?
2. 김종서가 살았던 시대
(1) 조선의 명군 세종대왕과 김종서
(2) 수양대군 vs 김종서
3. 김종서의 업적 및 위상에 대한 분석
(1) 김종서는 어떻게 북방을 개척할 수 있었나?
(2) 조선의 호랑이로 성장한 ‘대호’ 김종서
4. 적용 가능한 기업 전략 및 배울점
(1) 김종서란 인물을 통해 적용해 볼 수 있는 기업전략
(2) ‘인간’김종서장군께 배우고 싶은 점
본문내용
1. 김종서는 누구인가?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 세종 때 6진 개척을 주도한 인물로, 그리고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세력에 의해서 살해된 인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300여 년이 지난 영조 대에 복권되면서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다.
‘김종서’ 하면 우리는 6진 개척을 떠올리고 그를 무신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김종서는 1405년(태종 5년) 16세에 문과에 급제한 것을 시작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하였고 후에 그의 대한 평가를 보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는 본디 유학을 익힌 신하로서 몸집이 작고, 관리로서의 재주는 넉넉하나 무예는 모자라니 장수로서 마땅한 체격은 아니다’라고 전해지고 있었고 호랑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그가 수행한 업적과 불굴의 정신 때문이지 신체가 장대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김종서는 문과를 통해서 관직에 진출한 엄연한 문신이었으며 더욱 그는 조선조에서도 드물게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역시 6진을 설치하여 북방을 개척한 것을 들 수 있다.
1433년(세종 15년)에 최윤덕의 파저강 정벌에 이어 북방의 정세를 살피기 위해 함길도(함경도) 도관찰사(都觀察使)로 임명되어 국경 지역의 사령관으로 파견되었다. 세종은 김종서에게 명하여, 고려의 윤관이 쌓은 9성 중에 공험진이 어디인지를 실제로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하였고, 그것을 확인한 뒤 김종서로 하여금 공험진을 되찾으려고 하였다. 그 과정 중에 약 7~8년간 노력한 결과 개척된 것이 6진인데, 이는 두만강까지 경계를 이루는 현재의 국경선이 되었다.
또한 문종 대에 김종서는 고려사절요의 편찬을 주도하였다. 조선조 건국 이후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이미 태조 대부터 시작되어 1395년 고려국사가 편찬된 바 있고 이것이 이후 약 5차례의 개수 과정을 거쳐 1451년 고려사로 완성되었다. 이때 김종서는 고려사가 주제별로 편찬되어 열람에 불편하니 일자별로 기록한 사서를 편찬하자고 건의하였다. 그리고 5개월 만에 고려사절요 35권을 완성해 올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