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무정> 감상 및 분석-계몽주의사조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7.03.26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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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춘원 이광수
2. 「무정(無情)」의 선정이유
3. 「무정(無情)」의 줄거리
4. 작품에 나타난 문예사조적 특징: 계몽주의
5. 작품에 대한 감상
6. 이상화
7. 선정이유
8. 「나의 침실로」전문
9. 작품에 나타난 문예사조적 특징: 낭만주의
10. 작품에 대한 감상
본문내용
호 춘원(春園).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생. 소작농 가정에 태어나 1902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후 동학(東學)에 들어가 서기가 되었으나 관헌의 탄압이 심해지자 1904년 상경하였다. 이듬해 친일단체 일진회(一進會)의 추천으로 도일, 메이지학원에 편입하여 공부하면서 소년회를 조직하고 회람지「소년」을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동교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재차 도일,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무정(無情)」을「매일신보」에 연재하여 소설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였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1년 4월 귀국하여 허영숙과 결혼, 1923년「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하면서「재생(再生)」「마의태자(麻衣太子)」「단종애사(端宗哀史)」「흙」등 많은 작품을 썼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년만에 병으로 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 때문에 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그간 생사불명이다가 1950년 만포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밖의 작품에는 「윤광호(尹光浩)」등의 단편과「이차돈(異次頓)의 사(死)」「사랑」「원효대사」「유정」등의 장편, 그리고 수많은 논문과 시편들이 있다.
<중 략>
「무정(無情)」은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광수 문학에서 이 작품은 그의 전 작품과 정신적 연대성을 지닌 작품이다. 바로 작가의 자서전으로까지 언급될 만큼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도 “한국최초의 근대소설”이요, “초창기의 신문학을 결산해 놓은 시대적인 거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