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 운동
- 최초 등록일
- 2017.01.15
- 최종 저작일
- 20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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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형평사 창립 배경
Ⅲ. 형평사 창립과 활동
Ⅳ. 형평사의 해소
Ⅴ. 맺음말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개항 이후 그리고 서양의 새로운 문물과 함께 새로운 사상이 조선에 흘러들어왔다. 기존의 봉건적 질서에 순응하고 살아가던 많은 이들이 새로운 사상에 눈을 뜨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다양한 운동을 벌였다. 특히 1920년대에는 부문 운동이 활성화되어 학생, 여성, 청년, 농민 등 사회에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중에서 여기서 다룰 것은 신분 해방을 꿈꾸던 백정들의 운동에 관한 것이다. 오랜 시간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서 한껏 몸을 낮추고 살았던 이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집단적인 행동에 나서게 되었다. 그들이 그렇게 나서게 된 배경을 살펴본 후, 형평사라고 하는 백정들의 조직에 대해 그리고 활동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끝으로 그들의 운동이 어떻게 끝을 맞이하는지와 그 전개과정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Ⅱ. 형평사 창립 배경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정은 조선시대에 가축의 도축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을 말한다. 그 어원은 신역이 부과되지 않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조선에 들어온 북방계 유목민들 중 일부는 농경문화에 정착하지 못하고 도살업으로 먹고 살았고 그들만의 거주지를 형성한 이들을 백정이라 불렀다.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떨어져 살았으며 특수화된 직업 탓에 신분 사회에서 굉장히 낮은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백성이라면 마땅히 가져야할 병역과 납세의 의무도 부과되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제약과 차별이 존재했다. 백정은 그저 규제하고 관리해야할 대상으로 조선시대 내내 차별과 멸시를 받아온 사람들이었다. 개항 이후 새로운 사상이 들어오고 신분간의 차별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자 자연히 백정들도 봉건적 차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갑오개혁에서 법제적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었고 백정의 천민 신분해방도 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면천을 허락하는 정도였고 백정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나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참고 자료
고숙화, 2008, 『형평운동』,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나영, 2004, 「衡平社 運動의 歷史的 評價」, 동의대학교대학원
이용철, 2011, 「형평사의 노선분화와 성격변화」, 충북대학교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