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과학문명과 기술 - 천문학, 의학, 건축, 미술, 군사기술
- 최초 등록일
- 2017.01.08
- 최종 저작일
- 2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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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본론
1. 통일신라시대의 과학문명
1) 의복과 신발
2) 농기구
3) 이동수단
2. 통일신라시대의 기술
1) 천문학
2) 의학
3) 건축
(1) 통일신라의 궁궐
(2) 신도시
4) 미술
(1) 목판인쇄물
(2) 석조기술
5) 군사기술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I. 서론
통일신라는 몇 가지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통일에 근접한 상태의 국가였다. 특히 민족사적으로도 평화구도를 정착시킨 왕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신라는 지정학적인 측면이나, 지경학적인 측면 또는 지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발전 가능성이 가장 낮았다. 더욱이 삼국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업을 실현할 가능성은 고구려, 백제에 비하여 현저히 낮았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하에서 6세기 초 이후 150여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국가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통일사업을 완성시켰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동아시아와 한민족에게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여러 가지 한계도 존재한다. 동아시아의 질서는 당을 중심으로 한 1극 중심 체제로 재편되는 시기에 신라는 삼국통일을 하였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문화는 정체되고 편향된 문화양식을 띨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또한 고구려 체제 속에 편입되었거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여러 종족들이 우리 민족사의 영역에서 이탈하게 되는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이탈한 이들은 요나라, 금나라, 후금, 원, 청나라로 성장하여 역으로 우리를 압박하게 되는 문제점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남쪽에서는 일본국이 탄생하게 되었고 일본 발전에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한민족은 만주대륙을 상실하여 해륙국가, 해륙문명의 위상을 잃어버리는 문제점을 낳기도 하였다. 즉 고조선으로부터 고구려로 이어지던 원형 문화 및 북방문화가 불완전하게 계승됨으로써 문화의 다양성에 큰 손실을 입게 되는 등 질적인 변화가 야기되었다. 이외에 정치적이나 영토적인 면에서도 통일 대신 재분단인 남북국시대가 되었다. 신라가 주도한 삼국통일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통합이 부분적으로만 이뤄진 불완전한 통일이다. 하지만 삼국통일의 의의는 여전히 크다 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통일신라의 지정학적인 위치가 유리했으므로 해양을 통한 모든 국가들 간의 교류에 중간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참고 자료
윤명철(2015), 국가적 차원의 전략과 의지로 이룬 삼국통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윤상덕(2011), 통일신라문화, 국립중앙박물관
최종석(2007), 신라 미륵신앙과 첨성대, 금강대학교
인터넷 사이트, http://anastro.kisti.re.kr/history/official/official2.htm,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의 천문제도
인터넷 사이트, http://www.hani.org/hb/hb131.htm, 우리나라의 간략한 의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