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마천은 왜『사기』를 집필하였을까,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6.08.26
- 최종 저작일
- 2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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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를 읽고 쓴 독서감상문입니다.
마지막 작품을 읽고 부분의 개인적인 감상문을 신경 써서 작성했습니다.
사마천은 왜 모든 것을 다 잃은 후 궁형까지 받은 상태에서 좌절하지 않고 역사서를 편찬하기 위해 인고의 긴 세월을 견뎌냈을까에 주안점을 두고 감상문을 작성해봤습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사마천(司馬遷)의 생애와『사기(史記)』
2. 자유인으로서의 사마천
3.『사기』에 나타난 사마천의 인생관과 역사관
4.『사기』에 나타난 사마천의 여성관
5. 작품을 읽고
본문내용
1. 사마천(司馬遷)의 생애와『사기(史記)』
사마천(司馬遷)의 출생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BC 145?〜BC 186? 때의 역사가인 것으로 추청 될 뿐이다. 여러 설이 있기는 하지만 한(漢)나라 경제(景帝) 중원(中元) 5년(기원전 145년)에 태어났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자(字)는 자장(子長)이며 용문(龍門)출생이다.
사마천의 선조는 대대로 태사(太史;사관)였고, 부친 사마담(司馬談)은 한무제(武帝;BC 141〜87) 즉위 후 30년 동안 태사직에 있었다. 사마담은 학문에 밝았으며 천문에 능통하였기에 어린 사마천은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 사마천에 대한 교육은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부친 사마담의 영향이 컸다. 사마담은 병을 얻어 죽고 말았는데, 임종 시 아들에게 자신이 시작한『사기』를 끝마치도록 유언하였다(기원전 110년).
사마담이『사기』편찬에 끼친 영향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편찬 체계를 확립하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부분적인 기록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사마천은 그 유지를 받들어, 무제 원봉 3년인 기원전 108년 태사령(太史令)이 되면서 자료 수집에 착수하였다.
그 후 기원전 104년 42세 때『사기』를 저술하기 시작했으나, 흉노와의 전투에서 부득이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벗 이릉(李陵)장군을 변호하다 무제의 미움을 사, 기원전 99년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거세형)에 처해진다. 사마천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이런 모욕을 견딘 것은 부친의 유언 때문이었다. 그의 처절한 울분은 냉철한 역사가로서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데,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치욕을 보상받겠다는 일념으로 저술을 계속하였으며, 기원전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90년에『사기』를 완성하였다. 실로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사기』완성에 바쳐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