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국, 근세와 근대의 연결점
- 최초 등록일
- 2016.06.17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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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난(亂), 운동(運動) 그리고 혁명(革命) 사이
3. 태평천국 운동과 이후의 민족운동(民族運動)
4. 상제회(上帝會)와 그리스도교
5.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머리말
1840년, 임칙서(林則徐)는 호문에서 아편을 불태우고 그 불꽃은 서구 열강들이 청(淸)을 휘젓는 계기가 되는 아편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중화(中華)를 내세우며 천하에는 오직 자신들 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던 청은 영국의 강력한 해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만 천하에 자신들의 무능함을 알리고 말았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불씨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평천국의 설립자 홍수전(洪秀全)은 서당에서 글공부를 배우고 과거시험을 통하여 관직에 나가 입신양명을 하고자 하는 전형적인 그 당시의 중국인이었다. 그의 고장에서 영특한 천재소년으로 불리우며 사람들의 기대와 신뢰를 한 몸에 받은 홍수전은 관직에 나가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멸만흥한(滅滿興漢)’을 외치게 된 데에는 몇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번째 계기는 네 번에 걸친 과거의 낙방이다. 고장의 천재소년으로 기대를 받으며 그 장래가 촉망되어온 홍수전은 과거시험 낙방이 거듭될수록 주변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변하는 것을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천재로 여겨진 그로서는 그러한 취급, 대우를 견디기는 여간 힘들었을 것이다. 자연스레 예전 자신이 받던 대우를 돌려받을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고, 그것은 더 이상 과거시험에 재 응시 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세번째로 낙방했을 때가 1837년 24세 때 이며, 네번째로 낙방했을 때는 1843년 30세이다. 일찍이 젊은 나이부터 과거에 응시했기에 과거시험으로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 하더라도 아직 젊었다. 그렇게 그가 과거 이외의 길을 찾게 되는데, 그 실마리가 되어준 것이 바로 두번째 계기이다.
두번째 계기는 <권세양언(勸世良言)>과 그가 꾼 꿈이다. 이 부분은 필자가 이번 서술에서 중요시하게 다를 부분과 일치하므로 자세한 것은 그 이후에 다루도록 하겠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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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영. 『중국혁명사』. 도서출판 한울. 1992
최진규. 『太平天國의 宗敎思想』. 조선대학교출판부. 2002
차창룡. 네이버캐스트<홍수전>.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533
신승하. 『중국사』. 미래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