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의궤
- 최초 등록일
- 2016.04.20
- 최종 저작일
- 20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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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의궤소개
2.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를 자세히 보기 전에
3. 영조와 정순왕후
4. 조선시대 혼인절차
5.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
6. 의궤와 외규장각
본문내용
의궤는 의식과 궤범이란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며 왕실과 국가의 주요한 행사를 마친 다음에 제작하는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혼례, 장례, 제사, 잔치/ 세자, 왕후의 책봉, 존호 올리기, 궁궐건축, 국왕의 행차, 선원보략(조선왕실족보), 국왕의 행차, 친잠(조선시대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고 고치를 거두던 일련의 의식. 백성에게 양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를 널리 장려하고자 하는 것), 대사례 의식(국가에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 모여서 활을 쏘아 그 예의 도수를 살피는 의례), 중국 사신 영접, 태실 봉안 등의 의례나 행사, 사업을 시행할 때 임시기구인 도감을 설치하여 거행하였다.
<중 략>
가례는 원래 왕실의 큰 경사를 뜻하는 말로서 왕실의 혼인이나 책봉 등의 의식 예법을 뜻한다. ‘가례도감의궤’ 들이 모두 왕이나 왕세자의 결혼식을 정리한 기록임을 볼 때 ‘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가례는 곧 왕실의 혼인의식, 특히 왕이나 왕세자의 혼인의식을 뜻하는 용어로 볼 수 있다. 즉, 가례도감의궤는 왕실의 혼인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이를 기록으로 보존하여 후대에도 본보기로 삼으려는 취지에서 편찬했음을 알 수 있다.
‘가례도감의궤’에는 왕비의 간택을 비롯해 혼인의 주요 행사는 물론 혼인에 필요한 각종 물품의 재료와 수량, 물품 제작에 참여한 장인들의 명단, 행사와 관련하여 각 부서 간에 교환한 공문서 등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가례도감의궤’는 기록과 그림에서 축제의 분위기가 물씬 베어나 기록된 내용들도 활기차고 신명이 넘치며, 결혼 행렬을 그림으로 표현한 반차도를 함께 실어 보다 생동감 있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중 략>
왕실의 혼인은 간택 후 육례의 절차가 이루어지게 된다. 왕실의 혼사에는 세 차례의 간택이 실시되었다. 국가에서는 왕실의 결혼에 앞서 금혼령을 내리고 팔도의 모든 처녀를 대상으로 ‘처녀단자’를 올리게 했다. 그러나 실제 처녀단자를 올리는 응모자는, 25~30명 정도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간택은 형식상의 절차였을 뿐 실제 규수는 내정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간택에 참여하는 데만도 큰 부담이 따랐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