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전 <이중나선> 요약 작업
- 최초 등록일
- 2015.10.30
- 최종 저작일
- 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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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시작
1955년, 아직은 DNA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을 때였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그렇다고 DNA가 과연 그렇게 가치가 있는 연구주제인가에 대한 진실은 미제로 남아있었다. 이 경쟁은 모리스 윌킨스, 로잘린드 프랭클린, 라이너스 폴링,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나(왓슨) 이렇게 5명이 경합였고, 나는 승리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기사는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1 크릭
크릭은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다. 빠른 머리회전과 통찰력이 있었지만, 대다수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수다쟁이로 인식될 뿐이었다. 그는 이론가와 실험가 사이의 중간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본인의 업적에 대해 수다스럽게 떠벌리고 다른 실험실을 찾아다니며 실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스타일이었다. 또래의 동료들은 크릭의 수다스러움, 그리고 본인보다 뛰어난 재능에 그를 멀리했다.
#2 당시 DNA 연구 진행 상황
크릭은 내가 케임브리지에 오기 전 까지만 해도 DNA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또한 단백질을 연구한 지 2년밖에 되지 않던 그가 새로운 연구 주제를 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 그의 동료들 역시 DNA에 관심이 없어 그 연구팀을 짜기 위해서는 2~3년의 시간은 족히 필요할 상황이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인간적인 문제점이었다. 그 당시 DNA 분자 수준의 연구는 윌킨스가 독점하고 있었다. 영국의 기사도 정신 상 크릭이 윌킨스의 영역에 아무런 명분 없이 뛰어드는 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거기다 윌킨스도 DNA 연구에 지지부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조수로 영입한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바로 그 문제였다. 프랭클린은 X선 회절에 관한 전문가였는데 윌킨스와 의견이 맞지 않아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이즈음 미국의 권위있는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DNA 연구에 나서려고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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