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와 서민귀족
- 최초 등록일
- 2015.06.02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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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몰리에르
● 작가 연보
● 몰리에르의 생애
- 어린 시절에서 '일뤼스트르 테아트르'까지
- 유랑 시절
- 파리에서의 재 데뷔와 성공
- 문학 논쟁과 투쟁
- 말년기
2. 서민 귀족
● 발레-희극의 창시
● 서민 귀족
● 서민 귀족을 보고
본문내용
1. 몰리에르
● 작가 연보 『몰리에르, 진실 추구의 총체적 희극』이경자 저
1622 - 1월 15일 파리에서 wid 포클렝의 아들로 출생.
본명은 wid 바티스트 포클렝Jean-Baptiste Poquelin
1631 - 몰리에르의 부친이 궁정 실내장식업자의 직위를 얻음.
제쥐이트계인 콜레쥬 드 클레르몽에 입학하여 인문주의 교육을 받음.
1632 - 모친인 마리 크레세 사망.
1637 - 부친의 직위를 상속하기로 서약.
1640 - 오를레앙에서 법률학 공부.
1641 - 가상디와의 만남.
1643 - 루이 13세와 리슐리유 추기경 사망.
1월 부친의 직위 상속을 포기함. 6월 마들렌느 베자르와 함께
‘일뤼스트르 테아트르Illustre Theatre 극단 설립.
1644 - 1월 처녀 공연을 하였으나 실패.
6월 28일 최초로 ‘몰리에르’라는 예명 사용.
1645 - 8월 극단 문을 닫음. 빚으로 감옥에 투옥됨.
10월 베자르 가족과 함께 파리를 떠나 지방 유랑생활을 시작함.
<중 략>
2. 유랑 시절 (1645~1658)
몰리에르의 유랑 시절은 생각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프랑스 남서지방에서 명성을 떨치던 뒤 프렌느 극단의 지휘권을 맡아 귀엔느 총독인 에페르농 공작의 후원을 받기도 했고 후에는 랑그독 총독인 오비주 백작의 초청으로 랑그독 지방의 연례 축제 때마다 공연을 올려 막대한 상금을 받기도 했다. 또 콩티 공이 프롱드 난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로는 오비주 백작에게로 피신해 그를 후원자로 엎기도 했다. 오비주 백작과 콩티 공의 후원 하에 그는 랑그독 지방에서 공연을 계속했다. 하지만 오비주 공작의 갑작스런 죽음과 콩티 공의 기독교 귀의로 인해 그의 호시절은 막을 내리고 그는 파리로의 귀향을 결심한다. 뒤 파르크 부부와 카트린느 드 브리같은 뛰어난 배우를 보유한 그는 귀향 전 여러 번 파리를 방문하며 후원자를 찾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1658년 13년 만에 파리로 귀향했다.
참고 자료
『몰리에르, 진실 추구의 총체적 희극』이경자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