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경기전과 태조어진
Ⅲ. 다른 지역민들이 생각하는 경기전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궁(古宮)의 묵은 지붕 너머로 새파란 하늘이 씻은 듯이 시리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것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밀밀하였으며, 대낮에도 하늘이 안 보일 만큼 가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나무들이 뿜어내는 젖은 숲 냄새와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며, 지천으로 피어 있는 시계꽃의 하얀 모가지, 우리는, 그 경기전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를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위의 인용문은 최명희(崔明姬, 1947~1998)의 단편 소설인 『만종』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에서 묘사한 것과 같이 고즈넉한 정취를 자랑하는 경기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1335~1408)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한 곳이다. 경기전이 자리하고 있는 전라북도 전주는 태조의 본향(本鄕)이기 때문에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여겨진다. 그래서 전주를 풍패지향(豊沛之鄕)이라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경기전이 위치한 전주에서 나고 자란 시민들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전주가 가히 ‘조선왕조의 뿌리’라 불릴 만한 증거는 바로 이 경기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전주 시민들이 그곳을 그 만한 가치로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전주 시민들의 생각을 통해 경기전을 바라보며 그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경기전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는 곧 전주에서 오랜 시간을 나고 자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Ⅱ. 경기전과 태조어진
태조의 선대들은 전주에서 대대로 살았는데 고조부인 목조 이안사(穆祖 李安社, ?~1274) 때 동북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태조의 가문은 이안사부터 아버지 이자춘(李子春, 1315~1361) 때까지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참고 자료
최명희, 『만종』 (네이버 캐스트(navercast.naver.com)에서 재인용).
전주국립박물관, 『조선왕조와 전주』, 디자인공방, 2010,
건원릉비,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 (gsm.nricp.go.kr)
김종국 외, 『멋과 풍류의 땅 - 全北』, SK그룹, 1997,
최정규 외,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마로니에북스, 2010,안진희, 「경기전 태조 어진 임모연구」,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 2007,
남현정, 「군주의 초상화 속에 투영된 '시대의 얼굴'」, 『경북일보』, 2012.8.31.
이미경, 「조선시대 어진 연구」, 홍익대학교 교육대학원, 2007,
전북을 탐한 100인의 트래블로거들, 『트래블로거, 전북을 탐하다』, 문화유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