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교육
저작시기 2011.05 |등록일 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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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의 불안정과 혼란은 후삼국시대의 대립과 항쟁으로 이어졌으나, 지방 호족의 지원을 받은 왕건에 의하여 통일을 이루게 된다. 고려는 지방 호족의 연합과 지원을 받아 세워진 국가였기 때문에 국초부터 왕권 강화가 시급한 과제였다. 그래서 고려는 북진 정벌과 노비안검법 등을 실시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과거제도를 도입, 새로운 관료계층을 형성하게 된다. 고려는 건국 초부터 불교를 숭상, 민중들의 의식과 삶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한편으로 유교는 새로운 정치이념 및 교육의 원리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유교적 이념과 가치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적인 삶 속에서는 불교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국가에서는 또한 불교를 장려하여 과거에 승과를 두는 등 승려들을 우대하였고, 불법에 의해서 국가를 호위한다는 ‘호국 불교’의 성격이 강하였다.
고려시대의 교육은 당과 신라의 제도를 모방한 형태로 이루어졌고 문(文)을 숭배하고 무(武)를 경시하였으며, 과거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관학교육으로는 국자감과 향교 및 학당, 그리고 사학으로는 12도와 서당을 들 수 있다. 고려의 유교교육은 거듭되는 내란과 외적의 침입과 국가재정의 고갈 등으로 설비와 내용이 부진했던 국자감 등 관학 보다는 최충과 같은 학자들이 세운 12도 등 사학에 의해 내실있게 이루어졌다.
먼저 국자감에 대하여 알아보려 한다. 국자감은 성종 11년 건립된 고려의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유학적 소양을 구비한 관리양성에 그 목적이 있었다. 성종 때에 건립된 고려의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유학적 소양을 구비한 관리 양성에 그목적이 있었다.
국자감은 성종 때 건립되어 여진, 거란의 침입 등 외환으로 인해 큰 발전을 못 보다가 예종 때 이르러 국자감의 교육 진흥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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