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제국의 계획도시 폼페이
- 최초 등록일
- 2015.02.24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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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계획도시 폼페이의 시설과 도로
Ⅲ. 폼페이 귀족들의 삶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레포트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수업 중간에 시청한 고대 로마제국의 폼페이에 관한 영상을 보고 흥미가 생겨 한번 해보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폼페이에 직접 가본 경험이 있어 눈으로 본 기원전 8세기 로마의 도시는 믿기 힘들정도로 갖추어진 시설이 많았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의 생활수준 또한 매우 높아 큰 충격을 받았었다. 수업을 계기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교수님의 추가적인 설명 또한 폼페이에 관한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폼페이는 지금은 내륙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피서 ·피한의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처음에는 오스키인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다. BC 470∼BC 424년경에는 에트루리아인이 차지하였고, 그 뒤 BC 80년까지는 삼니트인들이 도시를 지배하였다. 폼페이라는 지명이 생긴것도 기원전 4세기에 삼니트족이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겼다.
폼페이는 스타비아의 노라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간지점일 뿐만 아니라 나폴리만과 내륙부를 연결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폼페이는 그 주변에 펼쳐진 광활한 포도밭과 올리브 과수원으로부터 와인과 올리부유 등의 특산품을 수출하기 위한 항구로 이용되었으며, 어패류로 만든 소스류와 용암을 재료로 한 화산석 등도 이 항구를 통하여 타지역과 교역을 행하였다.
AD 79년 8월 24일에 발생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로마의 폼페이는 최후를 맞이한 후 오랜 기간에 걸쳐 지하에 뭍혀있었다. 폼페이의 유적은 공식적으로는 18세기에 발굴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7세기 중엽에 이미 이 일대에 고대도시가 매몰되어 있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 수천년간 지하에 뭍혀있던 찬란했던 고대 로마의 도시가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참고 자료
http://blog.daum.net/kimjaegon/15857542
고대도시 폼페이의 도시형성과 지역분화 , 2003년, 대한지리학회, 남형우
http://exfor.tistory.com/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