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시대와 오늘날의 문화정책 간의 차이 (A+ 받은 자료)
- 최초 등록일
- 2015.02.13
- 최종 저작일
- 2013.05
- 4페이지/ MS 워드
- 가격 1,000원
목차
1. 서론
2. 본론
3. 결론
본문내용
서론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 프랑스, 나아가 유럽의 절대왕정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의 절대적인 권력은 지금의 북한 등 독재국가의 지도자들보다 더 강력했을 것 이라고 여겨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72년(1643~1715)이라는 기나긴 통치기간동안 어떻게 그처럼 귀족들의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혼자 절대적인 권력을 누릴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본론
루이 14세는 다섯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어 섭정을 받았지만 1661년, 이십여년간 권력의 중심이었던 마자랭의 죽음을 계기로 섭정을 거부하며 직접 통치를 선언했다. 그는 마치 신과도 같은 왕이 되고자 하여 왕권의 강화를 모색하고 그 일환으로 자신이 애호하던 문학과 예술을 장려하는 문화정책을 추진했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프랑스의 왕립아카데미학술원은 막대한 지원 덕에 번영했고 라신, 코르네유, 몰리에르, 페로, 르브룅 등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왕을 위한 작품들을 만드는데에 전념하여 루이 14세의 신성화 작업에 큰 공을 세웠다.
루이 14세는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가 집단을 기반으로 자신을 태양신 아폴론에 견주어 스스로를 신성시하였고, 실제로 아폴론 등 그리스 신처럼 분장한 모습으로 화려한 발레를 선보이며 귀족들과 일반 국민들에게 경외감을 일으키게 했다. 또한 평생에 걸쳐 국고를 어마어마하게 쏟아 부은 거대하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을 축조하여 온 유럽의 군주들의 동경과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실제로 수많은 유럽의 군주들이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새로 궁을 짓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너무 거대하고 장엄하여 화려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인 베르사유 궁전을 보면서, 당시 프랑스 민중들은 루이 14세에 대한 존경심과 유럽문화의 중심지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