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영국의 역사 전개: 내전에서부터 명예혁명까지 근대국가로의 형성과정
- 최초 등록일
- 2015.01.02
- 최종 저작일
- 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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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첫 번째 시기
1.1. 내전의 원인
1.2. 내전의 전개
1.3. 찰스의 처형과 공화정, 호국경 정부의 수립
2. 두 번째 시기
2.1. 호국경 정부의 붕괴
2.2. 찰스 2세의 초청과 왕정복고
3. 세 번째 시기
3.1. 왕위계승위기의 원인과 전개
3.2. 권리장전과 관용률의 주요 내용
본문내용
1.1. 내전의 원인
1625년 3월 찰스가 1세로 왕위를 계승받게 되었다. 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신수왕권과 무제한의 복종 및 의무의 신념을 확고하게 견지했다. 부왕이 말로만 주장했던 고답적인 대권의 관념을 곧이곧대로 실행하려고 했던 것이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제임스 치세 말년에 수년간 권력을 행사했던 버킹엄 공은 찰스왕의 통치 아래에서도 왕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주도 아래에의 영국의 전쟁과 외교 정책은 실패적이었고, 1625년 6월에 열린 찰스의 첫 의회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왕은 의회에 에스파냐와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재정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의회와 전쟁 계획을 협의하는 것을 거부했고, 의회는 의회대로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원하면서도 전쟁 비용의 제공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버킹엄은 거만하게 하원을 대했고, 하원은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더 이상 재정 보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한 찰스는 의회를 해산시켰다. 버킹엄은 네덜란드에서의 참담한 실패를 만회하려고 에스파냐의 보물선단을 탈취하기 위한 카디스 원정을 시도하였으나, 충분한 선박과 병력을 갖추지 못한 채 감행된 이 원정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이리하여 찰스의 치세 첫해는 20년 만에 재개된 전쟁의 연속적인 참패로 얼룩지게 되었다.
자금이 부족해진 왕은 할 수 없이 이듬해 초에 새 의회를 소집하게 된다. 그러나 의회는 과세를 거부하고 버킹엄 공에 대한 탄핵을 결의한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대신들에 대한 의회의 책임 추궁을 외면하고, 버킹엄 공의 모든 허물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며 그가 상원에서 재판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시 의회를 해산시킨다. 왕이 특별 보조세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를 보호함으로써 버킹엄에 대한 왕의 신임이 입증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외교적인 실패는 계속되었다. 그는 프랑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불화를 일으킨 끝에 결국 전쟁을 발발시켰다. 그러나 이 원정 역시 미숙한 전략적 판단과 질병 등으로 고전한 탓에 병사의 절반 정도를 잃고 패배하게 된다. 이 패배 이후 의회를 통하지 않고 재정을 조달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전례 없이 무자비하게 강제차입금의 징수가 강행됨에 따라 저항 역시 더욱 거세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