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와 68혁명
- 최초 등록일
- 2014.11.21
- 최종 저작일
-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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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포퍼의 생애와 사상
Ⅱ. 68혁명의 전개
Ⅲ. 68혁명 속의 포퍼
Ⅳ. 열린사회를 위하여
본문내용
Ⅰ. 포퍼의 생애와 사상
칼 포퍼는 190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출생했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으로 특히 아버지는 15,000권의 장서를 소장한 지적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포퍼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포퍼는 고등학교 중퇴 이후, 1918년에 빈 대학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였고, 1922년에 정식 학생으로 등록하였다. 1928년에는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포퍼는 빈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고 그에 경도되어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의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역사유물론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공산주의자들에 회의를 품고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게 된다. 이 시기에 또 하나의 사상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향후 포퍼의 사상을 정립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37년,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고, 이듬해에는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포퍼는 뉴질랜드로 망명하여 교수생활을 지속한다. 뉴질랜드에서 히틀러의 조국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에 분개한 그는 유명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과 [역사주의의 빈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전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1949년에 교수로 임용되어 은퇴할 때까지 교수로 계속 강의를 했으며, 1976년에는 런던 왕립 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은퇴 후에는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과학철학 분야에서 당대의 주류였던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가능성’에 반해 ‘반증가능성’을 제시했다. 포퍼는 과학이라는 보편적 명제는 시공간적으로 무한하며, 이를 증명하는 사례들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명제가 참임을 증명하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검증가능성’을 부정한다. 반면,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반증은 하나의 반례로도 가능하단 점에서 ‘반증가능성’을 제시하고 이것을 과학과 비과학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반증가능성’을 토대로 기존의 귀납적 연구에 대해 반(反)귀납주의를 제시하며, 연역적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했다. 그는 현재 지배적인 이론은 기존의 이론의 반증으로 성립된 이론이며, 언제든지 반증으로 인해 폐기될 수 있음을 주목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