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사 중세농업의 구조와 소농경영의 발전
- 최초 등록일
- 2014.11.15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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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인구변동에 관하여는 자세한 기록이 많지가 않고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200~300만 정도로 추정할 수가 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였다. 임란을 계기로 인구가 격감하였지만 다시 증가추세로 나아가다가 19세기에 정체가 된다. 입구가 증가하다가 갑자기 격감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조선전기 휴한법에서 연작법으로 발달과 함께 시비법의 발달로 인해 휴경지가 감소하게 되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 수리시설의 보급과 17c 이후 이앙법의 전국적 조급으로 인해 노동력의 절감효과가 이루어져 다각적 경영이 이루어졌다. 이앙법의 보급으로 인해 광작이 발달하였는데 광작이 널리 퍼졌는가에 의해서는 의문점이 든다. 광작 즉 대농영경영의 발전 전망은 노동력의 조건, 토지세의 부담과 지대율의 동향, 광작을 위한 농업 기술조건 등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18c 높은 인구밀도는 집약적 농업경영을 요청하였다. 광작은 당시의 자원부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둘째로 대토지소유자가 임노동자에 의존한 대경영 또는 병작제 중에 선택하는 데에는 지대율과 노동자의 부양비용이 중요한 판단기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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