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서양집의 등장
- 최초 등록일
- 2014.10.08
- 최종 저작일
- 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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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항이후 서양 집의 등장
2) 식민지 시대 공공건물
3) 식민지 시대 새로운 집
(1) 토막
(2) 문화주택
(3) 영단주택
(4) 도시형 한옥
4) 해방이후 집
(1) 해방촌
5) 박정희 개발시대와 집
(1) 벌집
(2) 달동네
(3) 청계천 판자촌
(4) 아파트
6) 강남, 타워펠리스와 서민의 집
본문내용
1) 개항 이후 서양 집의 등장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서양의 여러 국가들과 강제적인 국교를 맺음으로 개항을 맞이하게 되었다. 개항은 외국의 여러 문물들이 직접 유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에 따라 일본과 서구의 건축 문화도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외교 활동을 위한 공간을 짓고, 새로운 숙박시설인 호텔도 만든다. 근대 교육제도를 도입하면서 옛 서당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시설을 짓고, 교회 성당 등 종교시설을 세우면서 이와 관련된 건축문화가 외국인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온다.
세창양행
독일 함부르크의 마이어(Meyer)상사가 제물포에 세운 무역 회사의 숙소로 1884년 중국목수에 의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준공년도에 대해서 문헌상 확증된 자료는 아직 찾지 못했으나, 여러 고증으로 볼 때 1883년 후반기 혹은 1884년 전반기로 추정되고 있다. 건평 173.15평 일부 2층의 벽돌집으로 외벽에는 회칠을 하고 붉은 기와를 얹은 별장류의 주택이었다. (이 건물은 1차 대전 이후 일본에 의해 적국 재산 관리물로 처리되어 청광각으로 불리다가, 1922년 인천부청의 구입 이후 인천 부립 도서관, 1941년 향토관, 해방 이후 1946년에는 인천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50년 9월 15일 포화로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는 현재 맥아더 동상이 세워졌다.)
거주기능 외에 사무실․오락실․창고 및 기타 부속시설이 부가되고 있다. 원래는 이층 건물로 동쪽 옥상에 높고 네모난 전망대가 있었는데, 인천부청이 매수한 후 헐어버려 단층집이 되었다. 붉은 우진각 지붕과 흰색의 회벽, 사각기둥으로 이루어진 전면 9칸 아치의 후렴 등은 견실중후한 모습을 띠고 있으므로 독일의 국민성을 엿보게 한다.
명동성당
명동성당은 코스트(Coste) 신부가 설계하였고 파리선교회의 재정지원을 얻어 건립되었다. 1887년 한국과 프랑스사이에 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1898년 완성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로 쌓은 교회이며, 순수한 고딕식 구조로 지어졌다. 평면은 십자형이며 본당의 높이는 23m, 탑의 높이는 45m이다. 고딕양식의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면서 그대로 본떴고, 공간의 고딕적 느낌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강하게 주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