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와 전주 도읍의 의의
- 최초 등록일
- 2014.09.25
- 최종 저작일
-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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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들어가며
Ⅱ.후백제 성립의 배경
Ⅲ.후백제의 활동사
Ⅳ.후백제와 전주와의 관계
Ⅴ.맺음말
본문내용
후삼국시대는 신라말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각기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고려, 후백제 등이 세워지며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명분을 내세운 영웅들의 시대였다. 이러한 호족들의 전국시대 속에서 세워진 국가 중 후백제는 마지막까지 고려와 패권을 놓고 대등이 싸운 강대국이었다.
견훤의 후백제는 옛 부여 백제의 계승 국임을 자처하면서도 도읍을 전주로 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후백제의 전주 도읍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한다.
견훤과 후백제에 관한 대표적 논문을 살펴보면 먼저 1967년도의 문병헌 선생님의 후백제의 흥망고부터 시작한다. 이 논문에서는 후백제의 성립 과정과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으나 도읍 관련으로는 후백제가 전주에 도읍을 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도읍에 관한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는<후백제의 멸망과 견훤>: 김갑동 ( Gap Dong Kim )을 예를 들 수가 있는데 이 논문에서는 후삼국 중 가장 강력했던 후백제가 후삼국을 통일하지 못하고 멸망을 하게 된 국왕인 견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후백제 멸망의 여러 요인을 살펴보면서 견훤의 대의명분이 올바르게 사회적 상황을 정당화 시킬 수 있었는가를 평가를 내리면서 견훤의 정치적 상황과 왕건의 정치적 상황을 비교하면서 견훤과 후백제가 패망할 수 없었던 요인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 역시 후백제의 멸망 과정만을 설명하고 있기에, 전 논문과 마찬가지로 전주 도읍에 관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다음으로는 풍수지리를 측면으로 보는 서술된 김두규, 정기호 선생님의 후백제 도읍지 전주의 해석을 살펴볼 수가 있는데, 전주를 풍수적 혈처로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풍수를 중심으로 한 전주에 관한 해석만 풀이하고 있으며 후백제와 전주에 대한 관계 등은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참고 자료
김부식 『삼국사기』
이윤미 「9세기 후반 무주지역의 정치적 동향과 견훤의 자립」역사교육학회, 역사교육논집 제44권 2010
문안식 「견훤의 후백제 건국과 전남지역 호족세력의 추이 」경주사학회, 경주사학 제 22권 2003
김두규, 정기호 「후백제 도읍지 전주의 해석 풍수지리의 측면을 중심으로 」한국전통조경학회, 한국전통조경학회지 제22권 2004
김갑동 「후백제의 멸망과 견훤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제12호 2002
김주성 「930 년대 후백제 정권 내부의 동향 」경북사학회, 경북사학 23회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