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성 노예
- 최초 등록일
- 2014.08.30
- 최종 저작일
-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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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종군 위안부란
2. 군 위안부 제도의 실시 배경
3. 여성들은 어떻게 연행 되었는가
4. 위안소 생활
1) 군 ‘위안소’
2) 생활상
5. 귀한
1) 해방 후의 생활
6. 대응
1)한국정부의 대응
2)일본정부의 대응
7. 수요 집회
본문내용
1. 종군 위안부란.
'일본군 위안부'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군 위안소로 연행되어 강제로 성폭행당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들을 '정신대'라는 말로 불러왔다. '정신대'는 전시체제 아래서 일본 제국주의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특별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직 등을 지칭한 일반명사였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드는 1943년 이후엔 여자정신대 혹은 여자근로정신대에 한정해서 쓰이는 경향이 나타나다가 마침내 1944년 8월에 이르러 여자정신대근로령이 내려지게 된다.
이후부터 정신대란 말은 전쟁 노동력으로 동원된 여자에 한해서 쓰이게 된다. '여자정신근로령'에 의거하여 조직된 여자근로정신대는 남성들의 전쟁 동원으로 인해 부족해진 노동력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원래 다른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치루는 동안, 일본 군인들의 성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해 집단적 성행위 장소인 군대 위안소-위안소는 위안부들을 집단적으로 감금해 두고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오로지 정욕만을 채우는 곳이었다.-를 제도화하고 식민지와 점령지에 있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전선으로 수송, 체계적으로 성노예의 역할을 강요했다. 강제 동원된 여인들은 위안소에 배치되어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야 했는데, 이들은 일반적으로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라고 불리어졌다. 하지만 종군위안부라는 명칭은 강제성보다는 자발성을 내포하고 있어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중 략>
그러나 두 번에 걸쳐서 발표된 자료는 위안부정책의 전체상을 밝히기에는 너무도 적으며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구 내무성 자료, 후생성 등의 자료는 전혀 조사가 미치지 않았으며 정부 및 방위연구소 도서관에도 아직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이 두번의 발표로 조사를 마무리하였으며 진상구명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문제에 관해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및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 수상이 내한할 때 위안부문제로 형식적으로 사과는 하지만 한국 피해자측이 요구하고 있는 개인배상에 대해서는 계속 거부하는 자세를 보여 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