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조선전기의 촌락편제
- 최초 등록일
- 2003.06.26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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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절 조선전기의 촌락편제
제2절 임란 이후의 촌락재편
-진주 사례-
본문내용
고려중·후기이래 추진되어 왔던 군현제도의 개편작업은 여말선초에 이르러 보다 적극적으로 단행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초에는 전국의 300여 개 이상의 고을에 수령이 파견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방에는 상당수의 속현과 상당수의 향·소·부곡 등이 존재하고 있어서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14년(1432)경 까지도 107개의 속현과 향·소·부곡·장 등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조선초기 군현의 관내도 수령이 파견되는 주읍<읍치읍내>과 주읍에 직속되는 직촌·현사·진사 또는 향·소·부곡·사, 그리고 인사 또는 장사의 손을 거쳐 소속읍 수령과 연결되는 임내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하부편제는 방위면의 성향이 강한 4∼5개의 면과 리에 속하는 지역촌으로서의 이·사와 자연촌들이 별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실제 조선초기의 각 지역에서 보여지는 면·방·이·사·동·촌같은 명칭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명칭들은 때로는 상하관계로, 또 때로는 병렬적으로 존재하며 그 명칭이 명확한 구분 없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호칭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