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이승만, 박정희)
- 최초 등록일
- 2014.06.28
- 최종 저작일
- 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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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승만 정권
(1) 부산 정치 파동
(2) 사사오입 개헌
(3) 3·15 부정선거
2. 박정희 정권 (외자도입 중심의 경제건설)
(1) 쿠데타에 의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퇴보
(2) 유신체제
3. 시사점 및 결론
본문내용
1. 이승만 정권
타민족의 강제지배에서 해방된 민족사회의 첫 정권은 대체로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집권하기 마련이며, 그래야 그 정권의 역사적 정통성이 서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민족해방운동전선의 좌익은 물론 김구, 김규식 등 우익의 지지도 받지 못한 채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반공주의를 표방하면서 성립했다.
그리고 1차 임기로 끝날 수밖에 없는 정권이었음에도, 6.25전쟁과 그 후의 남북대결을 빌미로 장기 집권을 꾀했다.
역사적 정통성이 취약한 정권이 억지로 정권을 연장하려 하니 자연히 독재체제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의식이 높은 우리가 이를 허용할리 없었고 4.19혁명이 그 정확한 증거입니다.
역사적, 정치적 정통성을 갖지 못한 정권은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동북아지역에 ‘반공보루’를 구축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에 미국은 이승만 정권에 경제 원조를 하고 일제 강점기의 경제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재벌경제체제를 내새웠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독재체제가 한계점에 다다르자 그 경제체제도 취약성을 더하게 되었고 결국 이승만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중 략>
유신체제는 합법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박정희가 취했던 최후의 권력 연장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신체제를 선포하면서 박정희는 안보위기를 중요한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 나 1972년은 남북대화의 진전으로 긴장이 완화되고 비무장지대에서의 충돌이 줄어든 시기였다. 따라서 안보 위협이 유신체제를 선포케 했다는 이유는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박정희는 안보위기를 이용하여 이미 추진 되어 오던 권력의 집중과 장기집권을 과감하게 추진하였다. 유신체제는 한마디로 박정희의 일인 지배체제였다. 박정희의 권한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계엄령 하에서 국민투표를 통과한 유신헌법은 대통령을 입법, 사법, 행정의 삼부 위에 군림한 국가적 지도자로 규정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