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본론
1) 될 성 부른 떡잎
2) 전란 당시 발휘했던 리더로써의 모습
3) 풀리지 않는 부자 관계
3) 먹는 것이 곧 하늘이다. 대동법의 시행
4) 명분과 실리 사이의 외로운 섬 광해군
5)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인 폐륜
6) 끊이지 않는 망치소리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재위 15년 만에 조정의 비집권 세력인 서인들의 인조반정으로 왕좌에서 강제로 쫓겨나게 된 비운의 군주 광해군. 그의 죄목은 크게 세가지다. 하나, 폐모살제인 즉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것. 둘, 가렴주구로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렸다는 것. 셋, 임진년에 우리를 도와준 아버지의 나라, 명의 은혜를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정성을 다했다는 것. 승자가 기록한 광해군 일기 이외에 다른 사료들을 공부하면서 이제껏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몰랐던 진실과 새로운 사실들이 상당히 많았다. 왜 많은 사람들이 연산군과 동급의 폭군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는지. 만약 광해군 정권이 쿠데타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지 않았으면, 반정세력 서인이 집권했던 400년의 조선이 다른 운명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의문. 그렇다면 광해군이 바라던 조선은 어떤 모습이고, 통치기간 동안 어떤 일을 했을까?
<중 략>
대북파 이이첨을 시작으로 광해군은 화의 원흉인 영창대군에게 사약을 내리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게 된다. 대북파들의 연이은 상소를 받은 광해군은 “내 운명이 기막혀서 여러 차례나 망측한 변을 당하고 보니 괴롭고 한스럽기만 하여 곧장 귀를 막고 멀리 떠나고 싶을 따름이다. 이 어찌 내가 들을 이야기인가. 다시는 말하지 말라.” 라고 말하며 사안을 무시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상소와 압력에 못이겨 영창을 유배보내지만, 결국 신하들의 뜻에 꺾여 강화도에 위리안치 된 영창을 초가집 온돌방 안에 불을 피워 증살시킨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역모사건이 꺼지기는 커녕 탄력받은 대북파들은 양어머니인 인목대비 폐모론까지 주장한다. 결국에 광해군은 그녀까지 서궁으로 유폐시킨다. 아무리 자신의 뜻은 아니지만 결재를 내리는 자리에 있었고, 책임을 짊어질 위치와 입장이었다. 역사의 판단의 화살은 모두 광해군에게 돌아갔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삼강오륜의 법도를 최고로 치는 서인들에게는 반정의 명분으로도 손색이 없는 사건이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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