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화폐경제발달
- 최초 등록일
- 2014.06.06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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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의 배경
ⅰ 시장경제 활성화 정책
ⅱ. 교통로의 발달
Ⅱ. 상업적 농업의 전개
ⅰ곡물류의 상품화
ⅱ직물류의 상품화
ⅲ 도시 근교에서의 채소 재배
ⅳ 담배 소비의 증가
Ⅲ. 수공업에 나타난 상품화폐경제 발달
ⅰ관청수공업에서 민영수공업으로
ⅱ민영수공업의 발달
ⅲ광산의 개발
Ⅳ. 상품화폐경제의 활성화로 나타난 변화
Ⅴ. 마무리
본문내용
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한국 봉건사회의 기본적인 경제단위는 소농경제이며, 소농경제에는 소농업과 가내수공업이 결합됨으로써 자급자족을 유지하였다. 조선사회는 늦어도 16세기 까지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의 경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때는 토지국유의 원칙이 강력하게 관철되는 조건하에 농민들의 토지점유가 대개 균등하였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사회구조의 변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지주적 토지소유가 강화되면서부터 농민들의 토지 점유는 매우 불균등하게 되었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국가적 토지소유의 원칙이 약화되고 지주적 토지소유의 원칙이 강화되게 된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사회적 생산력 특히 이앙법의 보급 등 농업생산력에 있어서 일정한 발전이 있었고, 두 번째로 16세기 이전의 이미 조선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국가적 토지소유와 지주적 토지소유간의 모순이 임진왜란으로 중앙집권이 약화되자 지주적 토지소유가 우세하게 되는 방향으로 진전된 것이다. 이러한 지주적 토지소유의 전개는 봉건사회의 모순을 격화시켰다. 조선 전기의 봉건체제는 농민들의 토지점유의 균등을 전제로 하고 있었는데 후에 토지점유의 불균등이 야기되자 조선조 전기의 봉건체제, 특히 그 정부의 조세수취항목인 조용조 중에서 용조의 부담에 있어서 극단한 모순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토지가 균등할 때에는 조세가 호를 단위로 하던 사람을 단위로 하던 상관없었지만 토지분배가 불균등한 조건하에서는 조세가 위의 기준 중 어떤 기준을 가지고 부과되느냐에 따라서 그 부담의 공평성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토지분배의 불균등으로 말미암아 조세부담의 불공평성을 드러낸 것은 공물과 군포였다. 공물과 군포로 인한 농민들의 큰 불공평은 수취체제의 개혁을 도모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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