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 정도전의 생애와 개혁사상
- 최초 등록일
- 2014.05.07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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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정도전의 생애
2. 위화도 회군
3. 역성혁명론
4. 재상중심의 정치체제
5. 숭유배불정책
6. 참고문헌
본문내용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은 경북 영주에서 이성계보다 2년 뒤인 1337년에 태어났다. 1342년(충혜왕 3년) 경북 영주(榮州)에서 밀직제학 형부상서를 지낸 아버지 정운경이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 친구였으므로 이색 문하에서 글을 배울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 정몽주, 이숭인과 교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나이 24세가 되던 1360년(공민왕 9년) 성균시에 합격하고 2년 후인 1362년(공민왕 11년)에는 진사시에 붙어 충주사록, 전교주부, 통례문지후 등을 역임했다. 그 후 성균관의 박사(博士)로 있으면서 동갑내기인 정몽주와 함께 매일같이 과 함께 명륜당에서 유학을 강론했으며, 1371년에는 국가의 제사 업무를 주관하는 직책인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되어 5년간 전선을 관장했다.
<중 략>
그런데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일파는 곧 온건파와 급진파로 갈리었다. 발단은 누구를 왕위에 앉힐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색, 정몽주 등의 온건파는 우왕의 아들 창(昌)을 이성계, 정도전, 조준 등 급진파는 자기파에서 인물을 내세우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창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가서 왕씨가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라는 누명을 쓴 채 쫓겨나고 공양왕이 즉위했다.
온건파와 급진파 사이의 주도권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급진파는 가장 큰 사회문제인 사전개혁을 주장하는 일면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주장하며 왕조교체를 준비하고 있었다. 역성혁명이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연다는 뜻이다. 이는 개혁은 하되 고려라는 틀은 유지한다는 온건파의 생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1392년(공양왕 4년) 4월 4일, 왕조교체를 끝까지 반대하던 온건파의 태두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이성계의 아들 방원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그의 나이 66세, 이성계보다 한 살 아래였다.
참고 자료
김용옥 지음,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통나무, 2004.
박영규 지음,《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
박은봉 지음, 《한국사 100장면》, 가람기획, 1995.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강좌 한국철학》, 예문서원, 1997.
황광욱, 정성식, 임선영 저, 《한권으로 읽는 한국철학》, 동녘,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