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조식 대하여] 남명조식 의 생애와 학문
- 최초 등록일
- 2003.06.11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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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처사로 곧개 살아간 생애
2. 남명 조식의 학문사상
① 실천을 중시한 主敬果義之學
② 고고하면서도 우국애민한 선비정신
3. 사림과 국가에 끼친 영향과 공적.
1) 처사상의 확위
2) 사존관비의 가치관조성.
3) 영재육성과 국난극복.
본문내용
남명 조식선생에 대하여
1. 처사로 곧개 살아간 생애
南冥曺植은 朝鮮朝 燕山君 7年(1501) 6월 26일 慶南 陜川郡 三嘉面 兎洞에서, 아버지 彦亨(官承文院判校, 剛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 仁川李氏(忠順衛 菊의 딸이요 左議政 崔潤德의 外孫女) 사이의 三男五女중 二男으로 태어났다. 본가는 三嘉板峴에 있었고, 토동은 선생의 외가다. 相宅하는 術士에 의하면 李氏家는 명당이어서 酉年에 태어나는 아기는 자라서 현인이 된다고 하였다. 해산 바라지를 하던 외조부는 외손자를 보아서 기뻐하면서도 한편 자기네 運이 曺門으로 갔다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선생의 字는 楗仲이요, 號는 南冥이다.
@ 다섯 살 때까지 외가에서 자라던 선생은 아버지가 장원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로 이사해서 아버지한테서 문자를 배웠다.
@아홉살 때 큰 병을 앓았는데 어머니가 이를 걱정하자 [하늘이 나를 生함이 반드시 할 일이 있어서 일 것이니 요절할 리 없다]하고 되려 어머니를 위로했다 한다. 小學期에 들어서서는 李潤慶, 李浚慶 형제, 李恒등과 竹馬故友로 자라면서 학업을 닦았다. 아버지가 端川 郡守로 外任에 나아가자 잠시 거기에서 지나면서 經典子史와 天文, 地理, 醫方, 數學, 弓馬, 陣法 등 남아가 갖추어야 할 모든 지식과 재능을 익혔고, 특히 자기의 정신력과 담력을 기르느라 두 손에 물그릇을 받쳐들고 밤을 새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