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중남미문화의이해
- 최초 등록일
- 2003.06.07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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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중남미 상황
1이베리아반도상황
2)아메리카의 상황
<계몽주의>
독립운동의배경
독립운동의영웅
브라질의독립
독립후중남미문화들의정치발전과정
본문내용
Ⅰ. 그 당시의 중남미의 상황
1)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
16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넓었고, 강력한 나라로 군림했던 스페인은 1588년 펠리페2세의 무적함대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에게 패하면서 세계최강국의 위치에서 서서히 하향곡선을 그린다. 그리고 18세기에는 유럽에서의 패권을 잃게 되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경쟁국들에게 아메리카 영토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이들은 공개적인 전쟁을 통해 또는 자신들의 해적을 통해 스페인의 휘하에 있던 아메리카지역의 영토를 빼앗았으며 이들 대부분은 카리브해와 대서양의 도서지방 및 북미의 남쪽지역이다.
스페인의 불운은 해외영토의 상실에 그치지 않고 1807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하자 포르투갈 여왕과 섭정은 브라질로 황급히 도피하여 1808년 리우 데 자네이로에 닿는다. 반면 스페인은 당시의 국왕 까를로스 4세와 그의 아들 페르난도 7세가 왕위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들을 스페인 국경 근처에 있던 바요나로 불러서 왕위를 자신의 동생인 호세 보나파르트에게 넘길 것을 종용한다. 호세 1세로 즉위한 나폴레옹 동생의 권력 장악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전역에서도 굴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스페인 국민들은 1080년 5월 2일 마드리드에서 자발적인 민중봉기를 일으킨다. 이들 중의 일부는 절대주의 군주였던 까를로스 4세를 지지하나 나머지 대다수는 페르난도 7세를 선호한다. 1812년 포위된 카디스에 모인 의회 의원들은 스페인의 헌법을 작성하고, 그 헌법에서 스페인은 입헌 군주국임을 명시하는 가히 혁명적인 조치를 취했다. 스페인 국민들의 게릴라식 전투와 영국의 압력에 시달리던 프랑스는 1817년에 퇴각하고 왕권은 페르난도 7세의 손에 넘어간다.
한편 17세기에 불란서에서 시작된 계몽사상은 스페인에도 영향을 준다. 프랑스의 데카르트, 디데로를 위시한 백과사전파, 몽테스키외, 루소, 볼테르 등의 혁명적 사상이 근간을 이룬 계몽주의는 영국의 경우에는 홉스, 로크, 흄 과 같은 경험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되며, 러시아, 프러시아에서는 절대주의 군주를 태동시킨다. 스페인에서는 헤로니모 페이호가 이 사상의 옹호자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론에 치중했던 프랑스와 달리 스페인의 계몽주의는 실제적인 차원에서 발전된다.
참고 자료
없음